전북지역 언론계를 대표하는 원로인 임병찬 전북도민일보 사장(79)은 지난 50년간 언론인으로 종사하면서 해방 이후 전북지역 역사의 현장에 줄곧 함께 해왔다. 그의 발자취가 지난 1960년대 이후 전북의 역사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전주MBC 제1기 기자 출신인 그는 지금의 전주-진안간 모래재터널을 있게 한 곰티재 대형교통사고(1966년)와 전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이리역 열차 폭발사고(1977년) 등 도내에서 발생한 유례없는 대형 참사와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현장에서 직접 취재했다. 또 최근에는 지역발전을 위해 언론사 대표와 전북애향운동본부 총재의 자격으로 새만금 개발과 LH본사유치, 기금운용본부 이전 등 지역의 각종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힘
어느덧 60대를 넘어선 김봉연. 20~30대 그는 지금은 사라진 ‘해태타이거즈’스타이자 호남인들의 자존심이었다. 나아가 애환과 긍지를 지켜주던 희망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야구를 볼 때마다 그를 떠올린다. 김봉연 선수가 배트를 휘두르면, 공은 여지없이 하늘로 솟아 외야에 떨어지지 않고 긴 포물선을 그으며 펜스를 넘어가곤 했다. 방망이 하나로 숨 막히는 긴장과 희열, 탄성을 자아내게 했던 순간들이다. 정치적.사회적 소외의 시기인 80,90년대. 험한 세상 한 가운데서, 펼쳐줬던 그의 활약은 응원을 빚대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도민들은 고통스러움과 답답함을 시원하게 해소시켜 주곤 했다. 그의 야구 인생은 같은 시대를 살아온 암울했던 지
한광옥 국민대통합 위원장에게 가장 궁금했던 것은 별로 큰 게 아니었다. 어쩌면 소소한 일일 수도 있는데, 10여년 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가졌던 의문이었다. 이번에 물어봤다. 그리고 그 답을 들었고, 그 일이 한광옥의 인생에 중대 변곡점이 됐음을 알 수 있었다. “후회하느냐”고 물어봤다. 그러나 “좋지 않은 일이었지만, 약속은 약속이었다. 지켜야만 했다”고 그는 답했다. 한광옥의 무게감이 크게 느껴졌다. 전북 출신으로 대통령 비서실장, 당 대표, 4선 국회의원 등 화려한 이력을 가진 한광옥.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희망에 대해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6일, 서울 세종로에 있는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실
완판본은 조선시대 전주에서 발간된 옛 책과 그 판본을 말한다. 조선시대 목판인쇄는 서울 경판본, 대구 달성판 등이 있는데 전주 완판본은 판본의 종류나 규모에서 최고라 알려져 있다. 완판본은 16세기 후반부터 우리나라 출판문화 보급에 큰 몫을 담당했다. 특히 상업적 판매를 목적으로 한 방각본 소설은 완판본의 꽃이라 불리며 보급망을 통해 전국에 유통됐다. 방각본은 대부분 판소리를 기반으로 한 한글소설로, 경판본이나 달성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당시 발간한 방각본 소설은 23가지가 현존하고, 판본이 다른 종류까지 합치면 50여 종류에 이른다. 방각본 소설은 전라도 방언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임과 더불어 한글을 보급하는 일종의 교과서 역할을 했
최근 관객수 1천200만명을 돌파하며 한국영화사를 다시 쓰고 있는 영화 ‘국제시장’. 이 영화의 시놉시스(줄거리)는 6.25 한국전쟁 당시 흥남부두 철수를 시작으로 파독광부들의 이야기, 배트남 파병, 이산가족 찾기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꿰뚫는 내용으로, 많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다. 나이 든 관객들은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주인공인 덕수(황정민 분)의 이야기에 공감하기도 하고, 그 이후에 태어난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은 경험하지 못한 부모세대의 노곤한 삶의 모습에 경의와 함께 감사를 보낸다. 오늘 우리가 선정한 이야기도 어쩌면 어려웠던 그 시절을 이겨낸 장애를 가진 한 남자의 인생역경 스토리이자, 그를
“한 대 펴” 불 쑥 담배 한 개비를 건넨다. 불까지 붙여줄 요량이다. 우물쭈물 담배를 받았지만 손으로 뭉개고 말았다. 속으론 어찌나 아깝던지.8년 전, 고하古河 최승범 시인과 첫 대면은 이렇게 시작됐다. 신문에 게재할 원고를 받으러 가는 날이었다. 시인은 컴퓨터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아니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게다. 아직도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또렷하게 손으로 글을 쓴다. 인터넷에 각종 정보가 오가는 시절, 일주일에 한 번 원고를 받으러 직접 시인을 찾아야 했다. 시인은 원고를 쉽게 내주지 않았다. 완성된 시를 함께 읽어보며 수정과 수정 끝에 어려운
“왜 그렇게 맹목적으로 지지하나? 언론이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니요?” 정세균 의원이 중앙 선거에 나설 때마다 여기저기서 지적 또는 항의성 전화가 많다. “내가 조중동도 아니고 전북 신문 기자가 전북 정치인 대세(大勢)라고 쓰지, 그러면 뭐라고 씁니까? 이왕 선거에 나섰는데 돼야 할 것 아니요.” 대세든 아니든, 정세균 의원이 출마했다면 지역 언론은 당연히 밀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새정치민주연합 정세균 상임고문. 그는 도민과 전북 언론을 기반으로 큰 정치인으로 성공했다. 현재는 전북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중앙에 특별히 기댈 곳 없는 전북은 정세균에게 많이 의지해 왔다. 정 고문 역시 고향에 대한 관심을 놓지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에 대해 평탄하게 살아왔다고 말하지 않는다. 인생사 자체가 생로병사 그리고 그 삶을 이어가는 길이 순탄치 않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의 삶도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지만, 그런 교차의 굴곡이 훨씬 깊은 인생사도 있다. 경제학자에서 정치 신데렐라, 전북지사, 대권 경선 후보, 대주그룹 회장, 경제사회연구원 이사장 그리고 그 화려한 이면에 구속 여파. 유종근 전 도지사는 전북에서 보기 드문,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가진 인물이다. 보통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졌지만 누가 뭐라 해도 유종근은 우리 시대 전북의 한 역사를 장식한 인물이다. 그가 다시 한번 자신의 불꽃 삶을 시작한다. 며칠 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