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기 정동영, 노무현>










[서울]노무현
단일후보 만든 김원기, 정동영

어떻게 해서 끈끈한 연으로 맺어졌나.

 

 

“나가! 소리를
버럭 질렀는데 정말로 나가 버리데. 황당하긴 했지만, 역시 노무현이란 생각이 들더라구···.”

97년11월초
서울 남산 부근의 한 호텔. DJ의 대선승리를 염원하는 전북 민심을 느꼈던 것일까? 김원기 고문은 노무현 후보와 저녁 자리를 함께 했다. 당시
두 사람은 DJ가 정계복귀와 함께 창당했던 국민회의에 불참한 뒤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를 이끌고 있었다. 대선을 앞두고 한 표가 아쉬웠던 국민회의는
통추 쪽에 연달아 러브콜을 보냈고 김원기 노무현 두 사람은 통추의 최종 입장을 정하느라 수없이 대좌했다.

그런데 이날 저녁 자리에서 입당에는 합의했지만
대선후 국민회의와의 지분 문제 등을 놓고 두 사람의 의견은 계속 엇갈렸다. 정치권의 대선배인 김 고문은 ‘감히
나에게···’라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노 후보에게 나가라고 버럭 소리를 지른 것. 그런데
노 후보는 정말로 나가 버렸다. 김 고문은 대노했지만 이 사건은 오히려 그가 노 후보를 더욱 아끼게 된 계기가 됐다.

이에 앞선 93년3월.
민주당 전당대회 최고위원 경선에서 김 고문이 1위, 노 후보가 5위로 당선되면서 두 사람 관계가 급격히 가까워진 것으로 정가에서는 기억하고 있다.
이후 두 사람은 의기투합, DJ의 국민회의 창당에 반대하고 통추를 이끌면서 개혁작업을 계속해 왔다. 노 후보가 지금 김 고문과 수시로 접촉하고
대선 전략을 숙의하는 것은 이처럼 오랜 세월 두 사람에게 녹아 든 신뢰가 기반이 되고 있다. 순치보거(脣齒輔車). 두 사람의 관계를 집약적으로
표현해 주는 단어다.

김원기 고문과 함께 노 후보 당선에 심혈을 기울이는
정동영 고문. 정가에서는 97년11월, 정 고문이 국민회의 대변인일 때 노 후보가 입당하면서 본격적인 교류가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두 사람이 맞부딪히게 된 계기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사실 정 고문은 경선에 앞서 노 후보를 최대 경쟁자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노 후보가 경선 초반 울산과 광주에서
압승하면서 정 고문은 차기(次期)로 마음을 굳히게 된 것. 노 후보 지지를 놓고 한 때 ‘마음고생’도
있었지만 결국 대의를 위해 노 후보와 한 배를 탔다. 정 고문은 현재 노무현 후보 선대위 산하 국민참여운동본부를
이끌면서 전국 각지에서 개최되는 행사에 참석하거나 강연을 통해 노 후보의 당선을 호소하고 다닌다. 선대위 내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인다는 말을
들을 정도다.

이처럼 노무현 후보 곁에는 김원기 정동영 두
정치인이 자리하고 있다. 노무현 단일후보를 만드는데 결정적으로 공헌한 이들의 눈가는, 감격 때문이었는지 25일 오후까지
퉁퉁 부어 있었다. 과연 이들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꺽고 노 후보를 최종 권좌에 앉힐 것인지 민주당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김일현기자
cindy@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