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 평화동 호남제일여고 뒤 농소마을에서 사는 이모 할머니(67)는 최근 몇 달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 눈으로 밤을 세웠다











전주시 평화동 호남제일여고 뒤 농소마을에서 사는 이모 할머니(67)는 최근 몇 달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 눈으로 밤을 세웠다. 농소마을을 비롯 주변 4개 마을이 서부 신시가지 개발지역으로 지정됨에 따라 곧 정든 마을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문중
땅에 터를 박고 살던 터라 땅 한 평, 집 한 채 없어 이사비용 몇 푼에 고향 땅을 쫓겨 나야 하는 이 할머니는 앞으로 살아갈 걱정에 억장이 무너진다.


“그동안 가게를 운영하며 근근이 입에 풀칠하고 살았는데 이제 생계 수단인 가게마저 운영할 수 없어 살길이 막막합니다. 집도 절도 없이 나가서 죽을 바에야 차라리 예서 죽어야지요”

여뫼, 봉곡, 농소, 예산 등 호남제일여고 주변 4개 마을 320가구 주민들은 지난 7월 마을이 서부신시가지
개발지역으로 지정된 이후부터 웃음을 잃어버렸다. 토지와 건물에 대한 보상금을 받고 마을을 떠나야 하지만 주민 대부분이 남의 문중 땅에 세 들어
사는 세입자들이어서 빈손으로 쫓겨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현재 농소와 예산마을에는 180가구, 여뫼와 봉곡마을에는 140가구 등 총 320가구가 생활하고 있다.
이 가운데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가구는 40%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 60%는 제대로 보상 받을 수 없는 세입자다. 특히 경주 김씨와 김해 김씨
6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농소마을의 경우 50가구 이상이 문중 땅을 빌려 생계를 이어가는 세입자여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사업을 추진한지가 벌써 10여년에 이르고 민선단체장이 몇번씩 바뀌었지만 땅 한평, 집 한칸 없는 이주민
대책은 완전히 내팽개치고 있는 형국이다.

여뫼마을에 사는 박모(60) 할머니는 “가진 땅은 없어도 지금까지 남의 땅에서 농사 지어 평생 밥은 먹고
살았는데 앞으로 이곳을 떠나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농소마을에서 50년간 살고 있는 김모(70) 할머니는 “우리같이 수 십 년 전부터 종중 땅에 세 들어 살아
집도 땅도 없는 사람들은 나가서 죽으라는 말이냐”며 “매년 연말 성한 도로를 덧씌우고 길 한복판에 돌화단을 만드는 돈이면 임대주택도 몇 채씩은
지었을 것”이라고 불만을 나타냈다.

개발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마을 분위기도 바뀌었다. 이모 할머니(66)는 “예전에는 낮선 사람들을 만나면
반갑게 먼저 인사를 건네던 주민들은 이제 인사 대신 경계의 눈초리를 보낸다”며 “웃음소리로 가득 찼던 마을 복지관은 웃음소리가 그친 지 이미 오래다”고
마을 분위기를 전했다.

대부분이 60세 이상 고령인데다 주 생계 수단으로 농사를 짓고 있어 당장 이사할 집도 문제지만 마을을 떠난
이후 생계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다.

마을 일부가 도시개발구역에 포함된 봉곡마을 김모 할머니(73)는 앞으로 살 계획은 세웠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못하고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김 할머니의 눈물 속에는 약자의 슬픔과 앞날에 대한 걱정, 정든 마을을 떠나야 하는 서글픔 등
복잡한 감정이 담겨있다.

전주시는 현재 이들 마을에 대한 실사를 마치고 현재 한국감정평가 전북지회에 보상평가를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주시 관계자는 “보상액 평가 결과는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 나올 예정이다”며 “그러나 세입자의 경우 법적으로 보상 받을
길이 없어 주민들이 요구하는 수준의 보상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경원기자 du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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