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존재의 거울










 

사유와 존재의 거울

최명표

프랑스의 가난한 계몽주의자 장 자크 루소는
명저 ‘에밀’에서 어린이들의 순진무구를 다루고 있다. 그에게 어린이는 자연 그 자체였으며,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미래를 전망하는 거울이었다. 거울은 후대의 독자들이 루소의 사유체계를 재구성하는 데 유효한 은유이다. 거울은 물체로서 공간 속에 잠재적 장소를
마련하고 시간에 균열을 생기게 한다. 글쓴이는 거울을 통해 상상적인 것에 호소하며, 진실의 수호자 역할을 수행한다. 루소에게 어린이는 자신의 성정을
비춰보는 거울이었던 셈이다.

예로부터 서구에서 거울은 신의 완전한 얼굴로
인식되었다. 기원전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은 곧 신성의 반사상이라고 단언했으며, 아우구스티누스는 “‘성경’이라는 거울에
자기 모습을 비춰보는 사람은 빛나는 신의 영광과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그가 활약했던 중세에 등장하는 거울은 위인들의 것이었으며,
독자들에게 마땅히 본받아야 할 행동을 제시하는 전범으로 자리잡았다. 당시의 민중들에게 거울은 하나의 은유로 다가섰던 것이다.

그러나 거울에는 신성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이스의 나르시스 신화처럼, 거울은 반사상이 야기하는 환상으로부터 경계를 이끌어내는 모티브이기도 했다.
일군의 도덕주의자들에 의하면, 거울은 광기의 시선을 끌어들이며, 사치에 불을 지피고, 악령 혹은 죽음을 감추고 있다. 거울은 인간의 허영, 그리고
시신과도 연루되었다. 나아가서 거울은 계략을 은폐하고 있다. 거울 속에 같은 모습의 반사상이 만들어질 때, 바로 그 자리에 차이가 생겨난다. 이
차이는 의도적으로 대상을 변형시키며, 시선의 착란을 유도하고, 궁극적으로는 존재의 해체를 초래한다. 거울은 현대에 접어들어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라캉을 만나면서 복잡한 은유의 도식을 만들어냈다.

그의 난해한 정신 이론을 찾아나서기에 앞서, 거울을 바라보며 자신의 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볼 일이다. 그것은 선사의 면벽하는 자세가 아니어도 괜찮다. 다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과 비춰지지 않는 영혼의 실체를 따져보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자아의 성찰적 사유 속에서 현대의 수레바퀴는 움직이며, 자신의 사유하는
이성은 두께를 쌓는 법이다. 인간에게 성찰행위가 없었다면, 지금의 문화나 문명은 결코 이룩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거울은 불혹의 나이를 넘긴
사람이 더욱 자주 바라보아야 한다.

프랑스 콜레주 드 프랑스의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사빈 멜쉬오르 보네의 ‘거울의 역사(윤진 역, 에코 리브르)’는 거울의 정신사를 다룬 책이다. 하지만 그녀는
독자들이 주눅들지 않도록 섬세한 필치로 거울의 역사를 쓰고 있다. 가령 거울은 17세기에 이르러 유리거울이 주도적인 자리를 차지했다거나, 18세기에
들어서 거울은 각 가정의 실내 장식을 점령하였으며, 체경이 등장하면서 여성으로부터 환호를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페미니즘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사유의 단서를 제공해준다. 사실 거울은 여성에게 필수품이면서 애매한 징표이다. 여성은 거울을 통해 “자기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삶을
영위”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또 여성들은 거울을 보면서 성찰적 사유를 감행하고, 존재의 의미를 확장시키는지도 모른다.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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