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광부는 12월의 문화인물로 근대 역사학자 손진태씨(1900-미정)를 선정했다










문광부는 12월의 문화인물로 사학자이자 민속학자인 손진태씨(孫晋泰1900-?)를
선정했다.

본관이 밀양(密陽)인 그는 경남 동래에서 태어나 1908년 소학교에 입학했고,
1911년 서울의 중학을 졸업했다.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와세다(早稻田大)대학 문학부 사학과에서 역사학과 사회학을 전공했다.

그는 1927년 대학을 졸업하고 동양문고(東洋文庫)에 재직하면서, 민속채집을 위해
전국 각지를 탐방하기도 했다. 이후 1932년 귀국한 후 연희전문 강사로 교단에 섰으며, 송석하(宋錫夏)·정인섭(鄭寅燮) 등과 함께 조선민속학회를 조직하기에 이른다.

그는 이들과 한국 최초의 민속학회지인
‘조선민속(朝鮮民俗)’을 간행했고, 1934년에는 진단학회(震檀學會)의 창설에
참여했다.이후 보성전문 강사와 도서관장을 지내기도 했다.

8·15광복 직후에는 경성대학 사학과 교수가 되었고, 1946년 서울대학이 창설되자 문리과대 사학과 교수로 취임했다. 1949년 서울대학
사범대 학장, 1950년 문리대 학장을 거쳐 문교부차관 겸 편수국장을 맡았다.

1950년 6·25전쟁 때 납북돼 그 해 사망했다는 설도 있으나 확인되지 않았다.

그의 학문적 생애는 일제강점기에 민속학자로
활동한 시기와 8·15광복 후 역사학자로 활동한 시기로 나눌 수 있다.

그는
1923년부터 민속학 연구에 몰두하였는데, 그의 민속학 연구는 현실정치를 초월하여 민중문화가 가지는 보편성을 인식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1930년대
후반 현실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민족이 살아나갈 길을 명시하는 학문을 찾아 민속학에서 한국사학으로 전환했다. 8·15광복 이후 ‘신민족주의사관’을 제창하여 민족 내부의 균등과 단결, 민족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한국사를 서술했다.

저서로는 민속학에 ‘조선고가요집’ ‘조선신가유편’ ‘조선민담집’ ‘조선민족설화의
연구’ ‘조선민족문화의 연구’ 등이 있으며, 한국사에
‘조선민족사개론’ ‘국사대요’ ‘국사강화’ 등이 있다. /김영애기자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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