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줌인 – 첫 시집낸 최만산 시인










작가 줌인 – 첫 시집낸 최만산 시인

영미소설을 연구하는 영문학자 최만산 교수(57·군산대 대학원장). 그에게는 ‘학자’말고도
‘시인’이라는 또 하나의 라벨이 붙여져 있다. 자타천으로 문인활동 40여년. 이런 그에게 첫 시집
‘허구의 숲(시문학사)’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저는 평생에 딱 시집 한 권만 내놓을려고 했지요. 거기다
죽고 나서 가족이나 지인들이 챙겨주는 유고시집 한 권이면 족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내놓고 보니 너무 이른 감이 듭니다. 아무래도 유고시집
대신 제 평생에 한 권은 더 발간해야 할 것 같아요.”

시인만을 위한 시가 존재할 뿐, 시가 죽은 시대에 살고 있다고 강론하는 최 교수.
이런 시인이기에 자신의 시집 한 권도 그닥 반가울 리가 없다. 시인은 시집 무더기에 자신의 시집 한 권을 얹어놓는 심정이라고 덧붙인다.

시인에게 시는 ‘애증’ 그 자체. 고교시절엔 시 때문에 인간적인 충격을 겪었고,
대학시절에는 시의 정체성에 관한 충격을 겪었기 때문이다. 모두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시인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이처럼 시인이라고는 하나 ‘시’와 그리 편한 관계는 아니었던 최 교수가 끝내 ‘시’와
결별하지 못하고 시집 한권을 헌정하고 만 것이다. 시인은 유독 ‘폼(form)’을 싫어해 주변의 성화를 물리치고 출판기념회도 갖지 않았다.

말수가 적은 시인의 품성이 시에 그대로 전이되는 것일까? 그의 시는 단행이 특징이다.
짧고 압축적인 언어를 통해 독자들이 채울 여백을 충분히 남겨둔다. 또 그는 자칭 페미니스트이고 이런 성향은 시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대표적인 시가
‘나의 어머니’.

“어머니의 이름을 묻지 마시오 / 용지마을을 시집올 때
/ 어머니는 이름을 빼앗겼지요 / 식민지의 어머니 / 나의 어머니.” 시인은 일본의 압제에서
시달렸던 우리 민족의 애환과 여성들이 남성 지배문화에 핍박당했던 것을 동일시, 여성의 삶을 ‘식민지’로
상징화했다.

다작(多作)을 꺼리는 데다 패거리 문단을 지극히 경계하는 시인. 주위에선 그를
‘문단인’보다 ‘문학인’이라 부른다. 시인이 평생 써왔던 시들이 늦게나마 한
권의 시집으로 태어나, 시를 ‘사유’하는 독자들을 반갑게 하고 있다.

시인이 다시 “가닥가닥 접어놓은 오랜 지체를 한창이고 풀어낼 때”는 언제가 될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김영애기자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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