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여울<52>










◉시여울<52>


 

아름다운 꽃들이 많이 모였다

산호빛 진홍빛 다홍빛

이름 모르는 꽃도 많은데

모두들 아름답고 예쁘다

 

너 참 예뻐

 

네가 제일로 예뻐

 

옆에 들리지 않을 만큼

낮고 조용하게

속삭인다.

-조미애의 <꽃들에게>전문

 

농부가 두 마리의 소로 밭을 가는데, 황희 정승이 지나가다가 큰소리로 물었다. ‘좌우 어느 소가 일을 더
잘 합니까?’ 그러자 농부는 밭갈이를 멈추고 황 정승 가까이 와서는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저 오른 쪽에 있는 소가 밭을 잘 간답니다.’ 그러자
황 정승은 그 대답을 왜 이렇게 다가와서 작은 소리로 말을 하는지 의아스러웠다. ‘미물일망정 자기가 못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서운하겠느냐!’는
농부의 대답에 황 정승은 크게 깨달았다 한다. 꽃들은 그냥 꽃이 아니라 우리의 귀여운 자녀들이고, 조 시인은 그 꽃처럼 귀여운 우리의 자녀들을
보살피며, 중학교에서 사람농사를 지으시는 선생님이시다.

-해설 이동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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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여울<53>


 

장산곶매가 난다. 날아간다.

 

저어기 풀밭 웅덩이 가에서 잉어 한 마리 낚아 올려놓고 기염을 토하고 있는 당뇨병 걸린 ‘장진구’가 보인다.


 

무시하고 그냥 날아간다.

 

또 저어기 한 풀밭 구덩이 가에다 낚싯대를 드리워놓고, 갑자기 백주 대낮에 ‘백날좋’을 꺼내들고 딸딸이를
치고 있는 한 ‘고려장 직전’도 보인다.

 

또 무시하고 그냥 날아간다.

-박남철의 <장산곶매의 비상>전문

장산곶매는 해동(海東)의 표상이자 정신이다. 높이 나는 정신의 푯대 끝에서 지상의 군상들이 펼쳐내는 속물
근성을 어떻게 혼내줄까 상시 조망하고 있다. 현대는 넘쳐나는 물성의 악취와 시야를 가리는 욕망의 매연 때문에 올곧은 매의 정신은 돌아오지 않고,
그 역할을 시인들이 대신하고 있다. 시인들의 매는 오늘도 우리를 정찰한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도 보지 않으리라고 안심하면서 저지르는 행위들에도
항상 정신의 긴장을 놓을 일이 아니다.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의 맥을 놓을 일은 정녕 아니다.

-해설 이동희 시인

◉시여울<54>


눈 똑바로 뜨고 앞을 보며 게는 옆으로 간다

논두렁 잡아 허리 휘도록 농사져도

논둑 하나 훌쩍 뛰어넘지 못한 저들

가난 타령도 복에 겨운 소리라며

이제 근심 잊기 위해 농사짓고 산다는데

똥줄 뒤틀린 세상,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도

가을볕에 속살 채워 더 단단해진 게는

세상 뜨거울 때마다 출세를 꿈꾼다

질척이는 갯벌세상 옆으로 잘도 기어간다

추수 끝난 들에서 농부들

사각이는 모래 바람만 씹어뱉는 들판을 지나

백서 문서 말아 쥐고 태평양 적류 해협을 지나

게는 눈 똑바로 떠 앞을 보며 옆으로

옆으로 잘도 기어간다.

-유대준의 <꽃게>전문

그래도 다행이다. 눈이나마 똑바로 뜨고 앞을 보는 게가 다행스럽다. 비록 옆으로 기어갈망정 앞을 보려는 눈물겨운
삶의 행진이 가상하다. 그래도 가을볕 속에서 속살 단단해지는 결실이 있지 않는가. 생존의 무거운 몸피가 있지 않는가. 문제는 앞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옆길로 새는 인간의 무리가 문제다. 앞으로 가는 척하지만 끝내는 사심의 함정을 비켜 갈 줄 모르는 인간이 문제다. 아! 우리도
언제나 눈 똑바로 뜨고 옆으로 갈망정, 마침내 생존의 저 가파른 능선을 정면으로 넘어가는 신선한 생존이 될 것인가!

-해설 이동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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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여울<55>


속리산 법주사

오대산 월정사 어느 골짜기에서

안개비는 언제나

안개비로 뿌렸지, 안개였다면

안개로, 비였더라면

그렇게 울었을 거야.

해서, 가끔은

그대인 것처럼 행동하면서

조금은 가까이 다가섰다고 여기지만,

그 조급함만큼 안개 속에서

예비된 이별 주저하는 그대,

가문비나무처럼 조용히 고개 숙이거나

들어 바라보는 그늘진 눈빛.

-장기주의 <겨울기행․1>전문

이별은 항상 안개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나무마다, 풀잎마다 슬픔처럼 이슬을 맺게 있다. 우리가 인생의
여정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거짓 슬픔을 피워낼 수 있을까? 안개는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감추고 흐리게 하며 ‘(나를) 그대처럼 행동하게 한다’
이 ‘~처럼’에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안개로 인하여 인생의 겨울이 모두가 슬픔만은 아님을 그려낼 수 있다.

-해설 이동희 시인

◉시여울<56>


그대가 내게

표상으로 다가온 것은

구름이 푸른 봄날 오후

치장하지 않은 모습으로

옷을 입은 그대,

바람 들썩거리는 들녘

섧게 패인 아픔 자국

누구의 것인지

노을빛에 핀 그리움

그 누구의 슬픔인지

나를 울게 했어, 그대.

-유복남의 <노송> 일부

슬픔 때문에 우는 사람은 행복하다. 아픔 때문에 우는 사람도 행복하다. 왜냐하면 그 슬픔이나 아픔을 드러낼
수 있는 잔잔한 삶의 자락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슬픔도 울 수 없고, 아픔도 신음할 수 없는 사람은 어떻게 그 슬픔과 아픔을 드러낼 수 있을까?
방법이 없다. 스스로 아픔이 되고, 스스로 슬픔이 되어 비바람 눈보라를 온몸으로 견뎌낼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 그 표상(表象)이 곧 정신(精神)이다.
우리 민족이 소나무를, 그것도 늙은 소나무를 사랑하는 것도 바로 이 정신의 표상에 대한 존경 때문이다. 

-해설 이동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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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여울<57>


자판기 앞에서/ 동전 두 닢을 구겨 넣는다

습관적으로 무심히/ 밀크커피 버튼을 누르면

점멸등 깜박이며/ 졸졸졸 커피가 쏟아진다

담배 한 모금/ 순간의 무관심 고독이 지나고

절반의 하루 절반의 승패가

느린 동작으로 되감기고 있다

대본에도 없는 동전 두 닢의 모노드라마

암갈색 커피 속에 섞이고 있다

자판기 앞에서 뼛속으로 뭉친 내 정신의 해갈

아직도 졸졸졸 커피가 쏟아지고

플로이트처럼 이상하다, 역류하듯

갑자기 아랫도리가 젖는다

내가 버린 물이 바다 어디쯤

기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윤여홍의 <자판기 앞에서>전문

 

일상화되어 버린 비일상적인 현상들을 그냥 지나치고 산다. 두 번 생각하면 바로 보인다. 그 타성이 된 모순을
바로 보려면 두 번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비일상적으로 흘러가 버리는 삶의 타락-부조리를 경계할 수 있다. 그런 성찰과 사유를 통해서 우리는 놓쳐서는
안될 인생의 참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편리함이 행복은 아니다. 편리함으로 중독된 현대인의 고독이 창백하다. 때로는 더디고 불편하고 번거로울지라도
정겨운 손길만큼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것이 또 어디 있으랴!

-해설 이동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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