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小癡)의 금산사도(金山寺圖)










전북의 큰 어른

작촌 조병희선생 잠들다

서예가이며 시조시인이고 향토사학자인 작촌(鵲村) 조병희(趙炳喜)선생이 00일 숙환으로 전주 한마음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93세.

지난해 제1회 전북의 어른상을 수상한 선생은 전북문화재위원·서화감정위원·전북미술전람회 심사위원·전북예총 고문
등 도내 문화예술계의 기둥역할 뿐만 아니라 향토사학에도 매진해왔다.

선생은 1910년 충남 강경에서 출생했지만, 다섯살 되던 해부터 전주로 옮겨와 전주시 다가동 고택에서만
60년 넘게 살았다. 고령에도 일기쓰는 일을 거르지 않을 정도로 자신을 다스렸으며, 말년엔 ‘작촌 한시집’ 탈고에 매달리기도 했다.

우리나라 시조문학의 거목 가람 이병기선생의 조카인 선생은 가람과의 연(緣)으로 한동안 전북대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선생은 외모뿐 아니라 성격도 가람을 많이 닮았고, 또 인생관도 가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전주고등학교의 전신인 전주고등보통학교를 나와 한때 그림과 사진에 몰두하기도 했던 선생은 이후 서예와 시조·문화재연구에
전념, 한국문인협회·시조시인협회·표현문학회·전라시조문학회·향토사연구회등의 회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선생이 지금까지 남긴 글은 시조와 논문·수상·인물전·한시·조문·비문 등을 합해 무려 1천3백여편에 달한다.
저서는 시조시집 ‘새벽녘 까치소리’와 ‘완산고을의 맥박’ 등 다수가 있다.

선생은 1981년 전주시민문화상을 받았고, 1988년엔 전북도민문화상을 수상했다.
이후 표현문학회가 선정하는 제14회 표현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선생의 향토문화에 대한 관심을 이어받은 00아들 조정행씨는 배와 생강을 이용한
전북의 대표적 민속주인 ‘이강주’를 생산하고 있다.

90평생을 향토사학에 바친 선생은 사랑하는 이들을 뒤로하고 이 세상과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발인은 00일 000이며, 장례식장은 000이다. /김영애기자 young@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