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환경의 오염으로부터 자유로웠을 당시 지구 생태계에는 약 10억 종의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었다고 한다











지구가 환경의 오염으로부터
자유로웠을 당시 지구 생태계에는 약 10억 종의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태반이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대략 2억 종이 잔존해
있다고 한다. 그러면 약 8억에 가까운 종들은 어떻게 되어
진 것인가. 생과사의 생태계의 법칙 속에서 왜 삶을
선택하지 못했던 것일까.
쓸모가 없고 무용지물이기에 스스로 사라져 갔단 것인가. 아님 약육강식의 공식에 의해서 종말이라는
한계성에 매달려 울부짖음에 호소해야 했던 것인가. 우리는 이런 말을 가끔 사용하곤 한다. “약에 쓸려면 개똥도 없다.” 흔한 것도 사용하려면 찾기 어렵다는
뜻이지만 저자는 여기에서 미물의 견변(犬便)도 약으로 쓰여진다는 지나치기 쉬운 곳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나름대로 그 존재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 자동차가 도입 되어 진 이래, 우리나라는 자동차 생산국 세계 5위 안에 속하는 나라로 발 돋음
하였다. 20년 전만 하여도 면허증의 유무가 특별한 일로 규정 되어
진 일이 있었다. 그 때에는 나이 어린 사람이나 여성이 운전을 하게 되면 환호의 함성을
지르곤 하였다. 드문 일이였기에 비아냥거리는 말투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러한 어법을 사용하게 되면 아마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 받을 것이다.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지만 시대가 많이 바뀌었음을 짐작케 한다.

운전을 할 때 가장 거슬리는 것이 있다. 초보라는
표식도 없는데 앞에 달리는 차가 뭔가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일 때, 그리고 그 부자연스럽고 서투른 행동이
일상생활의 걸림돌로서 우리에게 다가올 때 우리는 금세 반응하고 그 서투른 존재의 유무의 필요성에 대하여 언급하기에 까지 이르게 된다. 어느 서양인이 한국 사람에 대하여 언급한 말이 있다. 한국인들은
참으로 좋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권이 개입된 일로 만나게 되면 그렇게 인색할 수가 없다고. 손해 보기를 좋아라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전혀 손해를 보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회임을 생각할 때, 짐짓 외국인의 충고에 숙연하게 머리를 조아려본다.

운전하는 행태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안다고 한다.
혼잡한 교통체증 속에서 밉상운전을 하는 얌체족, 그들이 다 원숙한 운전자임을 여러분은 알고는
있는지, 그리고 그 노련함이 모든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도 그러나
교통 혼잡 속에서 가끔 보여지는 양보의 미덕이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할 때가 있다. 그 주체는 다름
아닌 우리에게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초보운전자들 이었음을 기억하고 있는지...

세상은 참으로 멋드러진 양면성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쪽에서는 불편함으로 짜증스러움을 대신하는 개체이었지만 환경이 바뀌면 언제 그랬냐는 듯, 미덕으로 기쁨을 주는 대상이 되니 말이다. 그래서 이 세상은 음과
양이 꼭 필연적으로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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