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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을 베고 누워 귀를 씻노라

-‘한산시(세계사)’


최명표

‘寒山詩’는 중국의
전설적인 은자였던 한산자가 나무와 바위에 써놓은 시를 한 스님이 편집했다고 전해진다. 寒山子라 불리는 寒山은 생애와 행적이 불분명한 당나라의 시인이다.
다만 寒山이라는 명칭이 그가 은거하였던 天台山 寒岩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그는 젊은 날에는 번듯한 아내와 가족이 있었으나, 실패가 겹치면서 점차
미치광이가 되어 기행을 일삼았다.

寒山子는 70여년 동안 유교-도교-불교로 방황하는 사상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는 청소년기에 경전을 읽으면서 무예에 힘쓰는 등, 매우
호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여느 선비들과 마찬가지로 과거에 급제하여 정치적 야심을 펴보고 싶었다. 그러나 너댓 차례의 낙방과 함께 가족과
주위 사람들의 심한 구박과 멸시 속에서 寒山子는 사람들에 대한 환멸감에서 벗어나고자 신선술에 도취하였다. 하지만 신선술을 익히는 동안에 寒山子는
인간이란 아무도 신선이 될 수 없다는 사실만 체험한 뒤에, 자신의 생을 ‘그릇 속의 벌레 같다’고 참회한다.

그는 거듭된 과거 실패의 고통과 삶에 대한
회의 속에서 존재론적 욕망의 부질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마침내 그는 늘그막에 寒岩에서 본격적인 선시풍의 시를 쓰면서
정신적인 안식을 얻는다.

“今日歸寒山 枕流兼洗耳(이제
비로소 한산에 돌아와 개울을 베고 누워 귀를 씻노라)”

그의 시는 시인의 생애처럼 작품의 제목이
없다. 그는 대자연속에서 영혼을 씻어내고, 일체의 대상세계를 空으로 파악하게 된다. 그것은 도저히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만물의 본성이자 허적의 세계이다.

한산자는 다작의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당나라 말기 貫休 외에는 거론하는 이조차 없을 정도로 외면당했다. 근대에 이르러 胡適가 그의 연대기를 복원하면서 문학사적
위상을 부여한 뒤에 비로소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한산시’는 약
300여편의 시를 집성해 놓은 시집이다. 그러므로 곁에 두고 인생이 팍팍할 적마다 하루에 한 편 정도 자근자근 새김질로 읽어보기를 권한다. 연말연시의
은성한 소란 속에서 이 시집과 함께 자신의 삶과 사유방식을 돌아보는 일은 더욱 의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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