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여의 긴 대선 레이스를 거치면서 정치권의 중심에 서 있던 주요 정치인들의 명암도 극명하게 엇갈렸다










지난 1년여의 긴 대선 레이스를 거치면서 정치권의 중심에 서 있던 주요 정치인들의
명암도 극명하게 엇갈렸다.

선거기간 벼랑끝 싸움을 벌였던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는
57만여표 차이로 승패가 갈리면서 노 후보는 21세기 대한민국을 이끌 대통령으로 정상에 선 반면 `재수생'인 이 후보는 눈물 속에 정계은퇴를 선언해야
했다.

이런 승부 뒤에서는 각각 소신을 지키면서 대선승리의 기쁨을 함께 한 정치인이 있는가 하면 정치권 주변에서 `배신' `변절'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정치행보를 바꿨다가 동반추락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대선 과정에서 가장 명암이 엇갈린 인물은 국민통합 21 정몽준(鄭夢準) 대표가
꼽힌다.

그는 지난 여름 월드컵 열기와 함께 급부상했지만 민주당 노 후보와의 단일화협상에서 패한 뒤 선거일을 6일 앞두고 공동유세까지 나섰던 그는 선거를 불과 7시간여 남긴 상황에서 대북정책 등을 문제삼아 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후보가 거뜬히 당선됨에 따라 향후 입지에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됐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정 후보의 지지철회를 `제2의 초원복집사건'이라고 까지 말하며 정 후보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많다.

이른바 `킹메이커'를 자처했던 원로급 정치인들도 선택과 결과는 엇갈렸다.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 박태준(朴泰俊) 전 총리, 김윤환(金潤煥) 의원,
박찬종(朴燦鍾) 전 의원 등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으나, 이 후보의 패배로 위상이 동반추락했다.

민주당에서 노무현 당선자와 후보경선에서 경합을 벌이다 도중하차한 뒤 자민련 총재권한대행에 취임한 이인제(李仁濟) 의원은 김종필(金鍾泌) 총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회창 후보를 지원했다가 낭패를 봤다.

다만 김 총재는 막판까지 `중립'을 고수해 그나마 상처는 덜 입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선과정에서 `낡은 정치 청산론'이 부각되면서 거취를 고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 대표는 지난 5월 전당대회에서 1위로 최고위원에
선출되면서 `거함' 한나라당호를 이끌었으나 대선실패로 위상 재정립이 불가피해지게 됐다.

또 탈당후 복당한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의원이나 민국당에서 한나라당에
입당한 한승수(韓昇洙) 의원의 손익계산서는 마이너스로 보인다.

이밖에 `철새정치인' 논란 속에 한나라당에 입당했던 전용학 원유철 박상규
김원길 이근진 김윤식 강성구(이상 전 민주당 소속) 김용환 강창희 이완구 이재선 이양희 함석재(이상 전 자민련 소속) 안동선(민주당→정몽준캠프→자민련)
의원의 `선택'도 승패에서는 옳지 못한 판단으로 결론났다.

반면 민주당 정대철(鄭大哲) 선대위원장, 김원기(金元基) 정치고문, 신계륜(申溪輪)
후보 비서실장, 이해찬(李海瓚) 기획본부장, 임채정(林采正) 정책본부장, 김경재(金景梓) 홍보본부장, 김한길 미디어본부장, 허운나(許雲那) 인터넷본부장
등은 대선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이름을 높였다.

경선 패배를 딛고 새 정치와 신주류의 `얼굴'로 전국을 누비고 다닌 정동영(鄭東泳)
국민참여운동본부장은 추미애(秋美愛) 공동본부장과 함께 노풍 재점화의 기수로 뛰며 노 당선자가 차기 후보군으로 언급할 만큼 위상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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