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시 금산면 원평에서 차를 타고 김제시 쪽으로 10여분 남짓 달리다 보면 금산사 IC를 막 지나면서 오른쪽으로 20여 농가를
만난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의 쉼터 ‘평강의 집’

20여명의 불우 대모(代母)서혜진씨

 

 

김제시 금산면 원평에서 차를 타고 김제시 쪽으로 10여분 남짓 달리다 보면 금산사 IC를 막 지나 오른쪽으로 20여 농가를 만난다.

금산면 용산리 대유 마을이다. 이 마을 한 복판에 자리잡은 ‘평강의 집’. 짧은 겨울 햇살이 담 너머 대 숲으로 사라지는 게 아쉬웠을까. 오늘 이 집
식구들은 분주하기만 하다. 마당 한 쪽에 벽돌 서너 개를 세워 만든 아궁이 위로 구수한 메주콩 삶는 냄새가 넘친다.

이 메주로 만든 된장과 간장은 이 곳 ‘평강의 집’에 기거하는 오갈 곳 없는 노인들과 장애인들이 내년에 먹을 예정이다. 삶는 콩의 양도 푸짐하다. 온 식구가 지난 여름 땀 흘려 수확한 메주콩 2가마를 삶고 있으니 말이다.

장애인 8명과 거동마저
불편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등 모두 24명이 살아가는 평강의 집을 책임지는 사람은  다름 아닌 50대 아줌마 서혜진씨(50)다. 서 전도사로 불려지는 그녀가 이곳에 터를 잡은 지는 지난 99년이다.

지금처럼 많은 식구가 늘어나는 동안 그녀는 어찌나 바쁘게
살아왔던지 그간 3년의 세월을 힘든 줄도 모르고 지내왔다.

자신의 이름은 물론 어디에서 살다가 왔는지 조차 모르는
치매 노인들과 몸마저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중풍환자, 40대 나이에도 아직 3살 배기 수준의 행동을 하는 정신 장애자
등 평강의 집 가족들은 모두 그녀의 관심과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사람 뿐이다.

“그저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게 보람 있을 것 같아 이 일을 시작한 것 뿐”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인이기도 하다.

이곳에 터를 잡을 때만 해도 마을 사람들의 반대가 심했다. 오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 마을 환경이 좋을 리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설득 끝에 다행히 마을 사람들은 생각을 바꾸었고 해마다
방을 넓혀가며 더 많은 어려운 사람들을 식구로 맞이했다.

그러나 식구가 늘면서 그들에 대한 뒷바라지는 갈수록 힘이
들 수밖에 없었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노인들의 기저귀를 때맞춰 갈아주고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목욕을 시켜야 하는
등 그녀의 하루 해는 항상 너무 짧기만 하다.

그녀를 지켜본 사람들은 차라리 말을 아낀다.

대변과 소변마저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노인들을 보살피며
단 한번도 싫은 표정을 지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피붙이도 아닌 그들에게 그녀는 왜 이처럼 헌신적인
삶을 살아 올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한 대목이다.

이 질문에 그녀는 조용히 웃기만 했다. 잠시 후 그녀는 성경의 한 토막을 인용했다. “약한 사람을 돕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말했다.

그 동안 평강의 집에서 살다가 세상을 떠난 노인만 해도
벌써 7명이나 된다.

대부분이 병을 얻어 곳곳을 떠돌다 이곳에 들어왔다가 또
홀연히 그렇게 이곳을 떠난 것이다.

세상을 떠난 노인 가운데 유달리 잊혀지지 않는 할머니가
있다.

IMF직후 이 곳을 찾았던 한 할머니는
내내 아무 말이 없었다. 오직 먼 하늘만 바라보는 게 하루의 전부였다. 알고 보니 이 할머니는 외아들을 두고 있었으나 IMF로 파산을 했고 오갈
데가 없어진 뒤로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아들의 파산으로 충격을 받아서 일까. 세상을 떠날 즈음에는 심한 치매 증세를 보였고 온 몸에 욕창까지 생겨 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당시 할머니의 고통을 덜어
주지 못한 데 대한 안타까움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늘어나는 식구들의 끼니 걱정이 가장 큰 일이 됐다. 20여명이 살다 보니 한 달에 먹는 쌀이 무려 3가마나 된다. 비인가 시설이다 보니 행정기관의 도움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2∼3개 교회에서 가끔씩 도움을 주고 있지만 혼자 꾸려 나가기는 무척 힘들다.

요즈음에는 더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 보건복지부 정책이 비인가 시설을 양성화하는 조건으로 3년 이내에 법인을 만들고 규정에 맞게 시설을 갖추라고 요구, 법인은
그런 대로 만들었지만 시설 확장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뒷바라지도 벅찬 마당에 시설확장은 엄두도 내지
못할 형편이다. 그렇다고 인가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인가를 받으면 정부 지원이 뒤따라 경제적 형편이 다소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당장 돈이 없으니 어쩔 수도 없다.

그녀는 평강의 집을 만들면서 필요한 비용을 전주에 있는
아파트를 판 돈으로 댔다. 갖고 있던 자금도 모두 바닥이 나 남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힘이 들 수밖에 없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말 대신 “도와 준다면 더 없이 고맙지요”라며 수줍어 하는 그녀는 우리에게 ‘도움’의 가치와 ‘나눔’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백종순기자cawhite@


 

내가 본 서혜진씨

헌신적인 사랑에 감동 받았다. -남궁 진씨

 

 

아이들을 데리고 평강의 집을 가끔씩 찾는다는 남궁 진씨(여ㆍ35ㆍ전주시 완산구 평화동)는 서혜진씨의 헌신적인 사랑에 정말 감동했다고 말한다.

지난 여름 평강의 집을 찾았을 때다. 때마침 장대 같은 비가 퍼부어 아무도 밖으로 나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서씨는 비를 맞아가며 식구들의 거처가 물에
젖지 않을까 살피고 다니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몸도 가누지 못하는 노인들의 대소변을 받아
내고 몸을 씻기면서도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았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인 한 사람도 모시기가 힘들다고 말하는
데 20여명이 넘는 사람들의 뒷바라지를 말 없이 해오는 것을 보면서 부끄러울 때가 있다고 말한다.

자신 역시 기독교와 이미 오래 전부터 인연을 맺었지만
“서 전도사님은 남을 돕고 섬기는
일을 몸소 실천하는 보기 드문 분”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아들 딸은 물론 다른 아이들까지 데리고 평강의 집을 찾는 것도 아이들에게 서씨의
이런 삶을 보여 주기 위한 뜻이 있다. ./백종순기자cawhite@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