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무현의 사람들 -- 정세균










[서울] 노무현의
사람들 – 정세균

용궁이 있다면 정말 용궁을 다녀왔을 정치인이
정세균 의원(민주당·진안무주장수)이다. 선거 기간 내내 친노라인에 섰고
노무현 후보의 당선 가능성에 정치생명을 걸었기 때문이다. “19일 개표할 때는 정말 용궁에
갔다왔다니까. 심장이 두근거려서 죽는 줄 알았어. 이겼으니 살았지 안 그랬으면 어떻게 될지 몰랐을 거예요.”

정 의원은 16대
대선에서 줄곧 노무현 라인에서 움직였다. 선대위에서는 국가비전21 본부장을 맡아 노 후보의 주요 정책 공약을 완성했고 정확한 판세를 노 후보에게
직보, 상당한 신임을 얻었다. 이 때문에 당 안팎에선 그를 노 당선자의 ‘경제분야 최고의 브레인’으로
꼽는다.

노 당선자가 정 의원의 능력에 감탄한 것은 지난 98년.

당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파업은 IMF 체제의 위기에서 회생 국면으로 접어들던 한국 경제에는 상당한 타격이었다. 실제로 나중에 집계된 바로는 10만400여대의
차량을 생산하지 못해 총 9천56억원에 이르는 손실을 봤고 대내외적인 이미지 손상은 더 컸던 것으로 파악됐었다.

이때 파업을 조기에 끝나게 만든 최대 공신은
국민회의(구 민주당) 중재단이었다. 국민회의는 현대차 사태의 상징성을 감안, 노무현 의원을 단장으로 하고 정세균
노사정위 간사가 위원으로 참여하는 7인의 중재단을 구성해 울산으로 긴급 파견한다.

8월18일 늦은
밤, 울산에 도착한 노 단장과 정 의원은 노사분규를 반드시 해결하고 서울로 돌아가자고 다짐한다. 그리고 역할을 분담하는데 노동계와 친분이 있었던
노 단장은 노조측을 맡고 쌍용그룹 상무출신의 정 의원은 사측을 담당하기로 한다. 이후 중재단은 6박7일간 노조와 사측을 동시에 설득하면서 대타협을
이뤄낸다. 이 때 노 단장은 정 의원의 역량에 탄복했고 이후 깊은 교감을 나누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 것.

현대차 사태이후 노 단장은 정 의원의 실력을
이곳저곳에서 극찬했는데 당시 노 의원과 가까웠던 원외(院外)의 김원기 고문도 “정세균이가
실력이 대단하다고 들었다”면서 “장차 큰 인물이 될 사람”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정 의원이 친노라인의 핵심인사로 불리게 된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현대차 사태는 오늘의 노무현-정세균 라인을 구축하는 연결고리로 작용한 것이다. /서울=김일현기자
cin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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