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 한울타리










책 속으로 – 한울타리

 

편지 만큼 따뜻하고 다정한 것이 또 있을까?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는 시인 황동규의 ‘조그만 사랑 노래’도 그렇고, “오늘도 나는/ 에머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는 시인 유치환의 ‘행복’도 편지가 매개에 다름 아니다. 이수익 시인이 읊었던 ‘우울한 샹송’은
또 어떤가. 비애가 서려 있으나 역시 우체국에 가서라도 잃어버린 사랑을 찾겠다는 비장한 각오가 대단하지 않은가.

이렇듯 편지와 사랑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메일과 문자로 소식을 전하는 스테레오 타입은 뭐 ‘보지 않아도 비디오’. 대신 정성을 다해 꾹꾹
눌러쓴 편지 한 통은 지쳐있는 이들에게 대단한 위로를 건네기 마련이다.

한국편지가족전북지회 회원들이 만드는 ‘한울타리’는 느림의 철학을 실천하는 모델과 한가지. 창립한지 15년 됐고 문집 발간도 올해로 벌써 10번째에 이른다. 느림을
실천하겠다는 각오로 재작년 육필 편지를 그대로 인쇄해 배포했으나, 자격 갖춘 ‘눈’을 만나지 못해 원상 복귀했다.

이들이 펴낸 ‘한울타리’ 안에는 ‘병석에 계신 노모께 드리는 편지’를 비롯 친구, 애인, 남편, 아들 등 다양한 이들과 나눈 글이 행간에
가득하다. 그 중 오재금씨가 올 봄 바다를 닮은 친구를 그리워하며 보낸 편지 한 통은 읽는 이의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굴뚝에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를 때면, 화들짝 놀라 집으로 향하며 두 손을 꼭 잡았었는데. … 우연이라는 말을 참 많이 하더니만 우리에겐 우연히라도
만날 기회가 없었지? 한번쯤은 변해 있는 네 모습을 보고 싶다….”

꽃피는 새봄마다 헤어진 친구가 그리워 설렌다는
오씨. 누구나 기억창고 속에 켜켜이 먼지 가 쌓인 채 들어있을 추억 한편을 오롯이 들춰내는 것이다.

한울타리는 편지쓰기 활성화를 위해 만들어진
단체. 1993년 정읍우체국에서 전북지회를 결성하고 고옥금씨가 초대회장에 선임된 이래 오늘에 이르렀다. 회원으로
활동하는 이들은 50여명. 20대 후반부터 60대 후반까지 세대가 다양해 내용도 다채로운 편이다.

현재 한울타리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이는
서애옥 회장. 그는 한울타리를 자랄수록 이웃에 나누는 횟수가 많아지는 자두나무에 비유한다. 햇수를 더할수록 행복을
나누는 크기가 커졌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장차 크고 무성한 나무가 되어 전국적으로 나아가 세계적으로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매개가 됐으면 한다고 포부를
밝힌다.

김준호 전북체신청장도 한울타리가 정감 넘치는
사회를 만드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 김 청장은 “국민의 70%가 인터넷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3천800만명이
이동전화로 메일을 주고받는 시대가 됐어도 편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한울타리는 마음의 고향이며 안식처가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한울타리 회원들은 편지 뿐만 아니라 시인이기도
하고, 수필가이기도 하고, 때로는 꽁트를 쓰기도 한다. 이런 탓에 10집은 장르의 다양성을 선물하기도 한다.

지금 이순간도 문자를 날리느라 여념이 없을 엄지족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황동규 시인이 ‘즐거운 편지’에서 고백했듯 그 사랑이 언제쯤 반드시 그칠 것을
믿으면서.

/김영애기자 young@jj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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