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소설 심사평 - 간결한 문체와 치밀한 구성










신춘문예 소설 심사평 - 간결한 문체와 치밀한 구성

 

요 며칠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신춘문예 응모작품 48편을 나름대로 꼼꼼히 읽었다.
그 중 몇 편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어느 정도의 수준에 다다른 작품들이었기 때문에, 더욱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의무감과 함께 이야기의
흥미에, 문장의 미적 쾌감에, 심리 변화의 추이에 끌려 단순한 독자의 입장에서 한 편 한 편을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었다.

응모작의 태반은 현대소설의 특징인 내면세계의 추구에 집착해 있었다. 이는 문학이
행동하는 인간의 모방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인 정의에서 일탈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건이 극히 미미하거나 사적인 것이어서 오히려 심리
변화 자체가 행동을 대신할 때, 심리묘사가 비현실적이거나 동어반복을 계속할 때 독자와 공감을 형성하지 못한다. 독자의 흥미유발은 소설이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다.

작가의 개입 없는 사건의 제시는 독자가 직접 의미 찾기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인물의
내면세계의 추구는 인물의 의미 찾기에 독자가 단지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그 의미 찾기에서 의미 찾기를 해야 하므로 사건만큼 흥미로와야 할
것은 당연하다.

응모작 중에서 이종혁의 ‘하얀 꽃, 그림자 마을’, 김호경의 ‘다면체 속의 새’, 김명호의 ‘비틀즈로
가는 길’, 이현준의 ‘고등어’, 서철원의 ‘빙어’ 등을 추리고 그 중에서 이종혁의 ‘하얀꽃, 그림자 마을’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하얀꽃, 그림자 마을’의
이야기 자체는 극히 진부하고 흔해빠진 것이다. 옛 애인의 추억에 집착하여 일어나는 부부간의 갈등이나 불임여인의 불공을
빙자한 간음에 의한 수태 따위는 이제 소설거리도 못된다. 그런데도 이 둘을 결합한 이 작품은 ‘그림자’ 대신 빛을 발한다.

이 작품은 모든 이질적이고 모순적인 요소들이 상징성을 띠고 등장한다. 기억 속에
침몰한 교수, 불임의 산부인과 여의사, 향원 누나와 아내 그리고 여의사, 시어머니와 며느리, 출생 비밀과 간음의 고백, 남성의 숲과 여성의 바다,
빨간 불과 하얀 꽃, 뜨거운 태양과 어둠, 삶과 죽음, 실체와 그림자, 색과 공, 화음과 불협화음, 웃음과 비명, 고립과 마을, 정적과 파도,
배란기와 불두의 영험, 버림과 얻음, 불임과 풍요, 하얀 꽃과 오색의 띠배, 향원 누나와 띠배, 민속과 현대 등 여러 요소가 아이러니를 형성하면서
총체적인 구조에 참여한다.

더구나 생략과 함축을 수반한 간결한 문체는 암시와 여운을 남기면서 그 구조에 공헌한다. 이 작품은 이렇게 간결한 문체와 치밀한 구성으로 흔하고 진부한 제재를 밀도 있고 신선하게 제시하여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다.


정진을 바란다. 오하근 원광대 국어국문과 교수, 문학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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