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열매들은 뿌리를 향해 기억을 눕힌다
떨어지는 열매들은 뿌리를 향해 기억을 눕힌다
이 광 복
바람이 불지 않아도 열매가 떨어졌다
열매들은 제 힘으로 떨어지는 줄 알지만
어둠 속에서 홀로
희미해지는 제 몸의 기억을 흔들어 깨우는
뿌리의 안타까운 몸부림이다
떨어지는 열매들은 뿌리의 기억이다
기억 속에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잎을 매달아 햇살을
퍼 담던
뒤꿈치를 들던 발이 있고
그 햇살로 여물던 열매들이 세상 멀리까지
달려나가
향기로운 바람과 아름다운 소리들을 품어
줄
숲이 있다
그러기에 세상의 모든 열매들은
뿌리에 입술을 적시고 산다
뿌리 근처에는
어린 꿈들이 자라고
더불어 그늘이 자라고, 무덤이 자라고
때론, 가지
끝에 걸린
병든 잎새의 마른기침 소리까지 끌어안고
있는 숲
숲은 뿌리의 그늘이다
그러므로 떨어지는 열매들은
뿌리를 향해 기억을 눕힌다
김영애
@jj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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