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소설당선자 소감










신춘문예 소설당선자 소감
이종혁
새벽녘에 부시시 잠이 깨었다. 가만 커튼을 밀치고 창 밖을 바라보았다. 소담한 함박눈이 땅을 향해 소리 없이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 간밤의 일기예보가
틀리지는 않았나 보다. 올 크리스마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거라더니….

두툼한 윗도리를 걸치고 마당으로 나섰다. 새벽은 숨을 죽이고 조용조용 하얀 꿈들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회양목, 금측백, 동백나무, 사철나무…. 한겨울인데도 푸른 기운을 털어 내지 않은 상록수들, 그 나무들 위로
하얀 눈꽃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새벽녘에 잠이 깨지 않았더라면 나무들이 꿈꾸는 하얀 세상을 훔쳐볼 수 있었을까!
잠들어 있는 모든 것들의 틈바구니에서, 잠들지 않고 그들만의 꿈을 펼쳐 보이는 눈송이와 나무들. 그들이 펼치는 아름답고 잔잔한 꿈의 공연을 훔쳐
볼 수 있다니….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나는 조심스레 마당을 가로질러 하얀 꿈을 꾸는 나무들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나무들의 숨소리가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에 웅크리고 앉았다.

“너희들도 꿈을 꾸고 있구나. 하얀 꿈. 나도 꿈이 있는데…. 신문사에 소설을 한 편 보냈거든. 아마
내일이나 모레쯤 발표를 할 것 같은데….”

나는 새벽 내내 마당을 서성거렸다. 함박눈과 나무들이 소리 없이 어울려 노는 그
평화로운 무대에 어지러운 발자국을 찍어대면서….

당선 소식을 접하고 나니 기쁨이 앞섰다. 그 새벽에 몰래 훔쳐 본 하얀 꿈들이
내게 행운을 가져다 준 것 같아서...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와 같은 심정으로 당선 소식을 기대했을 문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 역시
늦깎이 문학공부를 하면서, 여러 차례 낙선의 순간을 경험했던 터였다. 부디 문우들께서도 신념에 찬 문학의 산행(山行)을 위해 더욱 단단히 신발
끈을 동여매고, 한 길로 나아가시길 빈다.

부족한 작품 끝까지 살펴봐 주시고, 당선의 영광을 내려 주신 심사위원께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린다. 축하해 주신 모든 분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가슴에 오래도록 새겨질 좋은 소설을 써나가겠다.

글쓴이 프로필

1967년 전북 정읍 출생

93년 MBC 드라마소재 현상공모 중편소설 부문 우수상 수상

1996 ~ 현재. 문예창작교실 청보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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