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세이13>










<그림에세이13> 기도하는 마음 -밀레의 만종-

장춘실<진안주천중학교사>

오늘은 임오년의 마지막 날, 기도하는 마음이 되는 걸 숨길 수 없다. 어느 해라고
일없이 지났으랴만 유독 금년은 사건이 많았다는 느낌이다. 그야말로 다사다난. 울고 웃었던 한 해를 돌아보자니 저절로 기도하는 심정이 되는 것이다.
저 밀레의 걸작 ‘만종’속 가난한 부부처럼 고개는 숙여지고 마음은 감사와 반성으로 차오른다.

밀레(1814-1875)는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태어났다. 파리에서 나막신을 신은
촌놈이라 놀림을 받으며 그림공부를 하다 바르비종에 정착했다. 왕의 사냥터인 퐁텐블로 숲 근처에 있어 아름답지만 가난했던 이 마을은 코로 루소 밀레가
살면서 미술사에 ‘바르비종파’라는 고유명사를 선물했다.

밀레가 처음부터 농민과 자연을 그린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종교적인 그림을 많이
그렸다. 물론 훌륭한 나체화도 그렸다. 상류사회가 요구하는 소재를 그렸음이다. 그러나 바르비종에 정착해서 주변의 경치를 사생하고 마을 농부들과
어울려 사는 동안 삶의 진실성에 눈을 뜨게 되었다. 즉 자연이 주는 거짓없는 아름다움과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성실한 삶을 발견하면서, 삶의 진정을
깨달은 것이다. 그 결과 부자들의 거실에 걸릴 그림, 잘 팔리는 그림이 아닌 밀레 자신의 철학이 담긴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이것이 그를 세계적인
화가로 자리잡게 했다.

‘만종’은 완성된지 몇 년간 비공개로 있다가 1867년 만국박람회
때 출품 인정을 받은 작품이다. 20호가 못되는 소품으로 구도 역시 단순하다. 멀리 지평선을 비추는 저녁노을 속에 가난한 부부가 일을 멈추고 기도하는
모습은 단조로울 지경이다. 개인적으론 달력이나 액자의 복사판, 화집에서 하도 많이 보아서 별 감동을 못받았다. 한마디로 단순구도와 칙칙한 색채가
그다지 아름다울 것도 뛰어날 게 없다 여겼다. 그러나 아니었다. 원화를 보지 않은 자 말하지 말라였다.

지난 여름 루브르에서 이 작은 그림을 만났을 때 숨이 멎는 듯한 감동을 받았다.
역시 명화는 허명이 아니구나. ‘천지창조’ ‘성모자’에
못지 않는 훌륭한 작품이었다. 어떤 종교화보다 더 깊은 고요와 경건함을 전달하는 이 ‘만종’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어떤 이는 이 그림을 새로운 양식의 종교화라고 말하기도 한다. 농촌생활의 진실을 그려낸 그의 사실주의
정신은 쿠르베에게 이어졌다.

이 작룸은 단돈 1000프랑에 팔려나갔다 프랑스로 돌아올 땐 800배를 더 줘야
했다. 80만 프랑에 사들여 루브르에 기증된 ‘만종’은 이제 전세계인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고 있다.

마침, 서울에서 밀레 작품전이 열리고 있다. 오늘의 가난과 고통을 견디며 내일의
꿈과 이상을 창조하는 자에게 복 있을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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