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 사잇길로











보리밭
사잇길로

 

내가
윤용하씨의 '보리밭'노래를 배울 때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으니까 1969년쯤 되는 셈이다. 그 당시 학교 선배로부터
'동심초'를 배우고 있던 터라 노래를 부르고 싶어 어쩔 줄을 모르던, 그야말로 이팔청춘의 시절이다. 더욱이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부터는 '내가 신자로서
어찌 유행가를 부를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가곡이나 세계적인 명곡을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웠는지 모른다.
학교에서는 음악실에 가서, 집에 와서는 예배당에 가서 이런 곡들과 씨름을 했다. 음대를 가리라는 생각도 그때 해본 경력이다.

그런데
무주 제일교회의 목사님 아들 가운데 아주 잘 생긴 청년이 있었다. 서울에 있다가 한번씩 무주에 내려오면 몇 개월씩
머물러 있기도 했다. 어느 날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예배당에 오니까 보리밭 노래가 흘러나온다. 부리나케 달려 들어가 보니 목사님의 아들이
아닌가? 완전히 성악가 수준의 곱디고운 테너였다. 난생처음 이런 성악가의 노래를 듣는 순간이다. 나는 넋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내가 지금 앉아있는지
서있는지 모를 만큼 그 노래에 심취되어 있었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하는
두 부분의 고음처리에 무진 애를 먹고 있던 나로서는 정말 꿈만 같았다. 전혀 어렵지 않게 소화해내는 그 선생님의 노래솜씨에 혀를 내두루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부터
토요일이 되면 무주 앞동산에 올라가서 노래를 불렀다. 선생님과 같이하면 더욱 좋고 친구와 있어도 너무 좋은 시간이다
.어쩌다 친구 없는 날이라도 난 그 산에 오르곤 했다. 산등선 아랫자락에 피어난 보리들을 바라보며 보리밭 노래의 열창이 시작된다. 몇 번이고 거듭된다.
그러는 사이에 보리는 점점 익어가고 낫을 든 농부는 한웅큼씩 베어 넘긴다. 어느덧 가을걷이 끝나고 스산한 바람이 살 속으로 파고들면, 이 산 저
산으로 메아리 쳤던 보리밭 노래도 숨고르기에 들어간다.

그 때나
지금이나 고음처리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지만 노래를 부르며 지낸 세월은 내 인생의 감성을 키웠고, 그 감성은 아직도
내 마음을 촉촉이 적시는 선율로 남아있다. 그리고 종종 옛날에 배웠던 가곡을 부르면서 눈시울을 붉히곤 한다.

/한성덕 목사<고산읍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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