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불감증, 큰 재앙을 부른다










핵 불감증, 큰 재앙을 부른다.

 

임성진 /전주대 교수

 

지난 월요일 밤 급한 연락 한 통을 받았다. 울진3호기에서 원자로 냉각재의
방사선준위가 상승하여 방사선 백색비상령이 발령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어지간하면 원전사고는 그 내용을 축소하는 데 급급한 게 우리의 현실이고 지난
9월 울진4호기에서 증기발생기 세관이 파단되는 큰 사고가 났을 때에도 아무런 비상령이 내려지지 않았던지라 놀라움이 컸다.

백색비상령은 원자력발전소 건물 내에 국한된 이상상태에서 발령되지만 원전에 의한 방사선비상의 1종에 해당하는 위험한 등급이다. 이는 원전의 상태가 대형사고로 발전할 가능성이 보일 때 내려지는 것으로, 한순간에 겉잡을
수 없는 상태로 치달을 수 있는 핵에너지의 속성을 고려하면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조용한 걸 보니 일단 발전소 외부로의 방사능 누출로까지
사태가 악화되진 않은 듯 보인다. 참 다행이다.

그러나 사고의 대소를 떠나 문제의 심각성은 국민들이 이런 일에 너무도 무감각하다는 데에 있다. 원전사고의 위험성에 대한 수많은 보도가 나와도 해당 지역 주민들만 긴장할 뿐 대다수 국민들은 그저 시큰둥하게 흘려 보낸다.
올 가을 월성 핵발전소부지가 활성단층지대에 있어서 지반이 침하하고 있다는 섬뜩한 보도가 나갔어도 그냥 그걸로 끝이었다. 이 번 경우는 한 술 더
떠 지금까지 어느 일간신문이나 방송도 이 문제를 다루지 않고 있다. 핵문제에 대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우리 현실에 가슴이 콱 막히고 만다.

울진3호기나 4호기는 모두 비교적 최근에 건설된 것들로 정부가 그토록 침이
마르게 자랑하던 ‘한국표준형 원전’의 대표작이다. 지금까지 이번 사고와 같은 핵연료봉 손상사례는 고리 1, 2, 3호기, 영광 2, 4호기에서
발생한 바 있으나, 분당 54,000카운트(cpm)까지 이르는 높은 준위의 방사능이 오염되어 백색비상령이 내려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울진3호기는 이미 상업가동을 시작하기 이전인 1998년 5월에 증기발생기
부품전체가 재질문제로 파손되는 사고가 일어난 바 있다. 당시 방치되었던 금속파편들이 지금까지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등을 떠돌다가 며칠 전과 같은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작년 10월경에도 이미 핵연료손상 사실이 확인되었으나 사업자인 한수원이 출력 100% 상태에서 1년동안 가동을 지속해왔다니
그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전북 인근에 있는 영광 4호기도 지난 1998년 불량 제어봉 부품들이 파손되면서 핵연료봉이 파편들에 의해 손상된 사건이
발생했었다.

한국형모델인 이들 원전에 사용된 컴버스쳔 엔지니어링(Combustion
Engineering)사의 핵발전모델은 실상 미국에서조차 아직 검증받지 못한 것이다. 컴버스쳔 엔지니어링사는 핵발전소 제조업에서 후발주자로서 웨스팅하우스사의
증기발생기보다 더 낙후된 모델의 증기발생기를 국내 핵발전소에 공급하고 있다. 한국형 모델을 적용한 영광 3, 4호기나 울진 3, 4호기 모두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재질(인코넬 600MA)의 증기발생기를 그대로 사용하고있기 때문에 이번 경우와 같은 사고는 앞으로도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우리나라 원전의 안전성에 관한 문제는 세계 각국의 원전기술이 뒤섞여 들어오면서 발생한 설계나 제작 등의
결함으로 노후화 현상이 조기에 나타나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 특히 월성에 적용된 캔두형 핵발전소는 냉각배관의 설계결함으로
안전성에 대한 끊임없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이미 캔두형 핵발전소들에서 냉각배관의 부식현상이 발견되면서 7기의 발전소들가 모두 장기간
가동 중단된 상태이다. 더욱이 90%대에 이르는 무리한 원전가동률이나 진도 7.0 이상의 지진이 일어날 수 있는 양산 활성단층지역에 인접한 고리?울진?월성
핵발전소는 대형사고의 위험성을 더욱 높이고있다.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날 가능성은 수만, 수십만분의 일에 불과하다”는 미국
에너지담당 고위관리의 확언이 보도된 지 불과 며칠 후 드리마일섬에서 원전사고가 일어났다. 또한 체르노빌에서 대 참사가 일어나기 두 달 전에 우크라이나
전력발전부 수상은 한 시사 잡지에서 “핵발전소의 노심용융사건은 만년에 한 번 일어날 정도이다.”라고 말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우리나라 원전의
고장과 사고들을 보면서 이제라도 핵에너지의 잠재적 위험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그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한순간에 모든 걸 잃게 만들 수 있는
핵에너지는 결코 미래에 대한 우리의 선택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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