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초대석=최진철 전북현대선수










수요초대석=최진철 전북현대선수

전북
축구팬들은 지난해 6월 태극 전사들의 월드컵 경기를 생각하면 지금도 터질 듯한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다.

숨죽이고
지켜 보며 한국의 월드컵 첫 승리를 염원했던 전북 팬들에게 태극 전사들은 첫 승리를 넘어 멋지게 월드컵 4강이라는
선물을 선사했다.

대한민국
전역을 뒤흔들었던 6월의 함성. 그 함성의 메아리는 지나갔지만 23명의 태극전사들은 K리그를 주도하며 침체됐던 한국의
프로축구도 살린 2중 성과를 올렸다.


중심에 한국 월드컵 대표팀의 최고 수비수 최진철(전북현대·32)선수가 있었다

187Cm에 달하는 큰 키로 질풍처럼 골문을 향해 다가오는 힘있는 유럽 선수들을 막아 냈다.

한국이
유럽팀들을 연파하고 4강 신화를 달성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최진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팬들의
뇌리 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스페인에
영원한 수비수 리베로가 있다면 한국에 최진철이 있다.

유럽선수들과
상대할 체격조건과 힘을 갖춘 최진철이 있었기에 한국이 지구촌 꿈의 축제인 월드컵에서 첫 승을 달성했고 4강까지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던 것이다.

국가대표
중 최장신인 최진철과 홍명보, 김태영이 구축한 수비라인은 한마디로 철통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보낸 최진철의 2002년 6월. 본인도 이 때를 가장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6월 4일 부산월드컵경기장에서 폴란드를 맞은 최진철, 전날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긴장했다.

최진철은
장신 공격수들과 헤딩 경합을 벌이면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선수는 월드컵 첫 경기를 승리로 마감했다는 흥분감에 새벽 4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선수는 앞으로 35세까지 선수생활을 하고 유럽에 가서 지도자 수업을 받겠다는 당찬 포부를 갖고 있다.

지난 6일 전주코아호텔에서 신년하례식 행사에 앞서 잠시 최 선수를 만나 보았다.

-전북팀에서 유일한 월드컵 대표 선발로 도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 왔는데 도내 서포터들과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보다도
팬 여러분께서 보내 주신 성원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앞으로도 팬 여러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이제는 팀 내 모든 선수들과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면 좋겠다”

-이번 월드컵에서 갈수록 힘이 강한 유럽팀들과 맞붙었는데 극복할 수 있었던 최진철 선수의 체력관리법이 있다면

“특별한
체력관리법은 없다. 평소 꾸준한 운동과 몸 관리로 체력을 안배하고 있다. 이탈리아와의 월드컵 16강전을 마치고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참으로 힘든 경기였지만 정신력으로 이겨냈다고 생각한다”

-지근에서 바라본 히딩크 감독의 성격과 그의 인간성에 대해 평가를 한다면

“처음엔
후배들이 히딩크 감독을 보고 무섭다고 했지만 나는 큰 형님처럼 너무 편했다. 그분은 능력 제일주의자다. 합리적이고
때로는 강하게 밀어붙이는 카리스마가 있다. 어딜 가더라도 히딩크 감독은 명장으로 남을 것이다”

-월드컵 4강전인 독일전에서 후반에 교체됐다. 후반 막판까지 뛰었더라면 1실점을 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있는데

“그것은
결과일 뿐이다. 당시 모든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지난번 월드컵에서 가장 힘들었던 경기와 이유는. 그리고 몇 게임을 뛰었는지

“독일전에서
교체된 것과 마지막 터어키전을 빼고는 모든 경기를 뛰었다”

-전북현대 입단은 언제였고 처음 포지션은

“원래
초.중.고시절엔 공격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숭실대학교에 진학하면서 감독의 제의로 수비수로 전환했다. 1996년에
전북현대에 입단해 1998년부터 1년 동안 공격수를 하다가 2000년부터는 다시 수비수로 전환했다”

-처음 누구의 권유에 의해서 축구를 하게 되었나

“무엇보다도
축구가 좋았다. 현 제주도 축구협회 강영호 부회장의 권유도 큰 몫을 차지했다. 초등학교 때 축구 특별활동 시간이
제일 재미있었던 것 같다”

-선수 생활 하면서 좌우명은

“‘남과
같이 해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좌우명이다.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항상 노력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게임 전 징크스는 없나

“별다른
징크스는 없다”

-아마츄어와 프로경기, 에이매치, 월드컵 경기를 망라해 가장 인상이 남은 경기를 뽑는 다면

“이탈리아와의
월드컵 16강전이다. 특히 이탈리아의 공격수 비에리 선수는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했던 선수였다. 힘이 워낙 장사였고
예측하기 힘든 플레이를 펼쳤던 것으로 기억된다”

-주위에서 평가하는 최진철 선수의 성격은

“보기보다는
차분하고 조용하다고들 말한다. 실제로 그렇다”

-가장 가깝게 지내는 대표팀 동료가 있다면

“모든
선수와 가깝게 지내지만 특히 (홍)명보 형하고는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다”

-앞으로 개인적 훈련계획과 꿈은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후에 선수 생활을 마치고 1-2년 정도 유럽에 나가 선진 축구를 배우고 싶다. 유학을
마치고 지도자가 되고 싶다. 축구를 떠나서는 하루도 생활 할 수 없을 것 같다”

-축구선수가 되지 않았더라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아마
다른 운동을 했을 것이다. 공을 갖고 하는 운동이라면 다 좋아한다”

 

최진철
선수 대표선수가 되기 까지

최진철
선수는 제주 서초등학교 4학년때 처음 축구선수가 된 이래 제주중앙중학교와 제주오현고등학교를 거쳐 숭실대학교를 졸업했다.

2001년 9월, 나이지리아 국내 평가전 때 대표선수로 발탁된 최 선수는 2001년 세네갈, 크로아티아전에 국가 대표로
출장, 수비수로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최진철은
제주도에서 초.중.고교 생활을 하는 동안 공격수로 득점포를 뽐냈었다.

숭실대에
진학하면서 수비수로 변신했던 최 선수는 1998년과 1999년 전북에서 다시 스트라이커로 돌변, 2시즌 동안
17골을 뽑아내는 활약을 펼쳤지만 결국 수비수로서 축구 인생의 꽃을 피우기에 이른 것이다.


선수는 부인 신정임 여사(34)사이에 완길군(6)과 은녕양(3)을 두고 있다.

/김복산기자 b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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