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문화의 세기를
살고 있다. 세계소리문화축제가 우리 도에서 열리고 있으며 아시아·아프리카 작가회의가 곧 우리 도에서
열리는 등 영화의 거리, 전통문화의 거리 등의 변모를 비롯한 하드웨어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재미있고
흥미로운 기획 등 소프트웨어적 측면에 있어서도 우리 도 역시 문화의 세기에 동참하고 있다.

 나는 이런 상상을 해
본다. 시내버스 승강장에서 혹은 영화의 거리나 전통문화의 거리 등에서 혹은 경기전, 오목대, 덕진공원 등의 솔숲에서, 이 지역 작가의 시, 소설 혹은 전라도 방언으로 된 재미난 글 한 편을 읽으며 전라도의 마음을 느끼고 새겨볼 수 있는 상상 말이다. 전주 경기전 샛문 앞에 ‘연꽃을 피운 돌’이라는 찻집이 있다. 나는 그 이름을 참 좋아한다. 상상력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가끔
되뇌어도 참 아름답다. 내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공공의 말하기가 이렇게 시적이며 감동적이라면 나는 외지에
사는 친구를 불러 그와 함께 시내를 걸으며 전주의 멋스러움을 누리고 싶다.

 한때 붕어빵엔 붕어가
있는가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붕어빵엔 붕어는 없으나 빵의 모양이 붕어를 닮았으니 일단 명명의 정당성이
확보된다.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외적 자극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그것의 해답을 통해 외부세계를
다시 인식하게 된다. 서학동을 지나며 학봉에 대해 이야기하고 인후동을 지나며 기린봉을 손짓하며 전주의 상상력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평화동에는 평화가 있을까. 혹시 오히려 평화가 없기 때문에  평화스러워지길 소망하여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닐까.

 전주 인근의 위성 소도읍의 지명 가운데 황금동이란 지명이 있다. 이곳은 예전에 똥골목으로 불렸다. 그리니 지금의 황금동이란 명명이 어떤 방식인지는
금방 알 수 있다. 평화동 역시 태평동처럼 평안한 동네라고 붙여졌을 가능성이 높지만 태평동과
평화동이 다른 느낌을 준다. 그 까닭은 태평에는 시끄러운 소요나 분쟁을 전제하지 않으나 평화에는 분쟁을
전제한다. 세계 평화가 그렇고 한반도의 평화가 그렇다.

 이름을 붙이고 말을
하는 모든 행위들이 모두 어떤 상태나 생각의 발로이며 이전 상태 그리고 이후의 상황 등이 전제되며 예고된다. 개인의
이름을 붙이는 것에서도 작명소를 찾든 옥편을 뒤지든 이름 짓는 이의 가치관이나 삶의 기준 등이 그 이름 속에서 묻어난다. 이는 개인의 취향으로 치부될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여러
사람들이 공유해야 할 때가 문제이다. 특정 기관이 대중을 대상으로 어떤 말을 할 때는 그 말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여러 차례 생각하고 신중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 초등학교
정문에 ‘폭력 없는 따뜻한 학교를 만듭시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 현수막은 좋은 학교를 만들겠다는
학교장과 선생님들의 의지를 표현하며 동시에 학생들에게도 그렇게 하라는 교육적 의미를 담기 위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의미를 전달하기에 앞서 도대체 그 학교에 얼마나 폭력이 많으면 저럴까 싶은 걱정을 먼저 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게다가 그런 문구가 현수막이 아니라 돈을 제법 많이 투자한 설치물에
쓰여 있는 경우라면 그 기관장과 담당자의 안목을 의심할 수밖에 없으며 그런 공무원들이 혈세를 낭비하는 것이 원망스러워지기까지 한다.

 개인의 말 속에는 개인의
사고와 태도가 반영되듯 공공의 말 속에는 그 기관의 태도와 수준이 나타난다. 몇 해 전 ‘과속금지’라는
말하기보다 ‘속도를 줄이면 변산의 아름다움이 보입니다’라는 말하기가 더 나음을 비교하여 설명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강압적 태도로 명령하는 말하기 식의 군림하고 통제하려는 태도보다 스스로 깨달아 삶의 순간을 즐기게 만드는 말하기가
더 아름다운 삶을 만드는 일임은 말할 것도 없다.

 한글날을 맞아 우리
말 사용에 대해 생각하면서 우리 지역의 문화적 척도를 가늠하게 하는 공공의 말하기가 수준 높고 아름다워지기를 소망한다. 잠깐 짬이 난 그 순간, 뜻밖에 창조적이며 아름다운 표현을 만나
우리가 이곳에 살고 있음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공간, 내가 사는 곳이 그런 공간이기를 소망해
본다.  

/ 김규남
(국문학박사, 전주대학교 한국어문화교육센터 책임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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