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산실 2 – 조각가 김동헌씨










문예산실 2 – 조각가 김동헌씨

복사무(輻射霧)가 잔뜩 심통을 부리던 11일 오전11시경. 일러준 대로 김제군
용지 점촌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니 멋드러진 교회하나가 나온다. 이후로는 공장지대 곧이어 돌무더기가 쌓인 곳이 나타나고 이 곳이 목적지인양 싶다.

손님을 반기는 것은 제때 수확을 안한 탓에 눈썰미로 짐작이 가능한 사과나무 한그루. 그 옆엔 지난 여름을 무성하게 보냈을 해당화 한그루도 누워있다.

조각가 김동헌씨(44·전북대 강사)의 작업실 풍경은 설원 위의 외딴집 그 자체. 다소 큰 체구의 김씨가 난로 옆으로
안내한다. 활활 타고 있는 난로만이 김씨의 존재를 알려줄 뿐, 안에 들어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변변히 앉을 곳 하나 찾기 어렵고, 벽은 얼기설기
황토흙을 발라둬 겨우 바람을 막을 정도. 30여평에 이것 저것 놓여있는 풍광이 김씨의 인생을 짐작케 한다.

김씨는 8년전에 축사를 빌려 이곳에 작업실을 꾸렸다. 당시만해도 차도 사람도 드문
곳이어서 그의 고독한 작업과 잘 맞아떨어졌던 것. 공장이 많이 들어선 요즘엔 오가는 차도 사람도 많아져서 오히려 김씨가 이방인처럼 낯설다.

“조각은 철저히 혼자만의 작업이다. 누구와 상의할 수도
없고, 누가 도와줄 수도 없는 일이다. 혼자서 계산하고 또 혼자서 작업하고 그러다 보면 시간이 가고 인생이 흐른다. 마치 도닦는 심정과 닮아있다고
할까?”

김씨의 작품소재는 대부분 ‘대리석’. 망치로 돌을 깨는 작업이 좋아서다. 처음엔 조각하기
편해서 선택했지만, 이젠 아예 돌 깨는 재미에 맛을 들인 탓으로 놓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김씨가 가장 좋은 돌로 꼽는 것은 익산의 여산석. 무늬가 있는 점도 좋고, 작업을
해두고 보면 볼수록 맛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량이 달려 요즘엔 중국석을 많이 사용한다.

나주에서 태어난 김씨가 전주와 인연을 맺은 것은 전북대학교 입학. 이 곳에서 아내도
만나고 전주가 좋아 아예 정착했다. 졸업후 한 때 서울 상동여중·상동중에서 8년정도 교사생활을 했지만 적성이 맞지않아 그만두기도 했다.

격식 갖추기를 좋아하지 않는 김씨지만, 작업시간 만큼을 철저히 격식을 따진다.
오전9시면 출근해서 오후5시면 손을 놓는다. 시간표대로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경험 때문이다.

김씨 작품들의 표정은 그의 모습과 흡사하다. 설사 여자일지라도 듬직한 체구에 서글서글한
인상이 그를 닮아 있기 마련. 이는 그의 작품대상이 거창한 이념이나 철학을 소유한 인간이 아니라,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를
표상으로 하는 탓이다.

전통적인 석재를 고집하고 자연주의적인 소박미를 추구하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는 김씨. 변변한 손님조차 모실 데 없는 30평의 공간이 그의 창작 산실이라며 헤설픈 미소를 짓는다. 사람을 잘 만드는 남자 김동헌.
거칠고 힘든 노동을 천부의 장인인양 전념하는 모습이 몹시 감동적이다.

쩡! 쩡! 돌을 다듬다보면 모든 시름이 사라진다는 김씨가 오늘도 10년이나 됐다는
작업복을 입고 돌을 쪼고 있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김영애기자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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