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났다.

그리고 20년 만에 다시 전주로 돌아와 10년이 지났다.

이곳에 이사 와서 한동안 추억이 깃든 장소를 찾아다니며 옛 기억을 그리고 흔적들을 더듬고 되새기는 시간여행에 푹 빠져 지냈다.

사이폰으로 내려주는 원두커피와 음악에 취해 몇 시간씩 지루한 줄 모르며 얘기 나누던 작은 찻집, 냄비우동을 잘하던 그 분식집과 소바가 맛있던 그 집도, 헤어지기 아쉬워 먼 길로 돌아가던 그 골목길을 찾아 다니며 행복해했다.

정겨운옛 모습이 아직 남아있어 설레고 흥분하다가 때론 변해버린 모습에 아쉬워하기도 하고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려 실망하기도 했다.

얼마 전 관통로변 어느 바에서 예수병원장을 지낸 미국인 실 박사의후손을 만난 적이 있다.

초등학교시절 오랫동안 입원해있던 막냇동생 약심부름으로 예수병원을 자주 들락거렸던바 있다.

오가며 본 병원부근 선교사 거주지역의 뾰족지붕붉은 벽돌 이층집 삶은 항상 궁금했다.

사진 혹은 영화 속에서나 보았던 그 생경한 모습들이 가까이 있는게 참 신기했고 숲 속 이국적인 마을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였던 것이다.

철조망너머 또래 백인 아이들이 연못가에서 놀던 모습을 한참씩 바라보곤 했었는데 그날 실 박사의 딸이 그 연못을기억해내곤 구면이라고 해서 놀라기도 했다.

하여 이 지역 기독교 선교의 역사와 흔적은 물론 그 속에담긴 봉사와 사랑의 향기가 스며있던 그 자리에 고층아파트가 옹색하게 들어앉아 있으니 참으로 당혹스럽고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전주 도심에는 또 하나의 옛날 병원 건물이 있다.

전북대 부속병원이덕진 캠퍼스로 이전하고 관공서로 사용되다 현재 폐허로 남아있는 자리가 바로 그곳이다.

이 건물을 철거하고‘한지 박물관’이 들어선다니 또 한번 가슴이 철렁했다.

그낡은 건물을 보면서 왜 생각이 많았었는지….옛 석탄 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세련된 문화공간으로 바꾼 영국의노만 포스터의 ‘레드 닷 디자인 뮤지엄’, 낡은 오르세역을 미술관으로 활용한 프랑스의 사례, 테이트 모던 모던아트 갤러리로 재탄생된 영국의 화력발전소, 북경 북동부의공장지대를 개조해 상상력 넘치는 예술촌으로 바꿔 세계적 명소가 된 따산즈의 798예술지구 등 국내외의 세련되고 매력있는 리모델링 디자인 사례를 떠올렸음이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자, 생각해보자. 도 2청사 공간을 전시 공간은 물론 이런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예술 활동까지도 전시하는 생동감 넘치고 현장감있는 예술 문화 공간으로 바꿔보라. 작가와 관객이 소통할 수 있는 체험적 교감이 이뤄지는 공간으로 변신하면예향 전주의 문화적 명소는 시간문제다.

수술실과 해부실, 입원실이 상상력과 열정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작업의 장으로, 공동화된 도심 속 소통의 장으로 재탄생되면 이는 전주시민을 넘어세계적인 공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제의 우리 문화 죽이기에 이어 숨가쁘게 내달려온 근대화와 산업화 속에서 우리 전통문화의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인식하는 노력은 가상하다.

특히 슬럼화되다시피 했던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많은 노력과 투자가 헛되지 않아성공한 전통문화 중심도시로 주목받고 있음도 매우 다행스럽고 자랑스럽다.

그렇다고 예서 멈출 수는 없다.

일제 강점기와 산업화 과정에 지어진근대건축물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건축물은 건축적 질과 문화재로서의 보존가치를 떠나 도시 표정과삶의 궤적을 담고 이어주는 소중한 흔적이기 때문이다.

상당수 근대건축물이 이미 사라져버린 것은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기와지붕과목조의 한옥만이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교동 한옥은 전통건축의 원형과는 다소거리가 먼, 일제강점기에 개발된 한옥 형식으로 변형된 집장사집이다.

그렇다 해도 이를 파괴해서는 안된다.

본질을 제대로 알고 그 역사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천년 역사만이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역사 속에서도 의미 있는 내용과 이야기 거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근대사 그리고 현재는 미래의 전통이고 역사일 수 있다.

이의 의미는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데 있다.

이를 통해 지속 가능한건축과 도시디자인의 새로운 정신을 창출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도 2청사 건물’을 죄 뜯어내고 번듯한 ‘한지박물관’으로변모한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꺼림칙하다.

또 한번 악몽을 꿀 것만 같다.

<백석종 전주대 건축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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