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학자 이용엽씨(68). 그의향토사에 대한 애정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특히 서예가이기도한 그가 보여준 전북미술에 대한 관심은 두말하면 잔소리. 직접 발품을팔며 자료수집에 나섰을 정도다.

그것도 20여년이라는 적지않은 세월이었다.

이런 그에게 전북미협이 발간한 ‘미술근대사’나동학기념사업회에서 펴낸 ‘전북예술사’는 부족하기 짝이없는 자료. ‘근역서화징(오세창 저)’과 ‘한국서화인명사서(김영윤 저)’에 의존함으로 오류는물론이고 빠져있는 부분도 많다며 변변한 미술사가 없음을 늘 안타까워했다.

그러던 차에 최근 그가 내놓은 ‘전북미술약사(전북역사문화학회 刊)’는 이런 애정의 산물. 20여년 수집한 자료는 물론 본보에 1년여에 걸쳐 30여차례 연재한 ‘전북미술대전 30년사’는 토대가 돼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책은 도내 미술계를 집대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설씨부친을 비롯 서화인 88명과 더불어 서양화가 35명의 작품세계를 정리함으로 전북미술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기엔 충분하다.

그가 새롭게 찾아낸 인물도 많다.

윤균을 비롯 전학순, 서홍순, 유재호, 김진민 등. 이들은 면사무소 제적부를 뒤지고 물어물어 후손을 만나 족보를들추는데다 수없는 현장답사를 통해 가능했다.

자료 수집은 실제 열정만으론 한계가 많은 게 현실. 동학농민전쟁과일제 강점기, 6.25 민족전쟁으로 자료들이 소실된데다 세월이 많이 흘러 증언할 사람조차 없으니 어려움이적잖았을 터다.

이런 상황에서 향토사학자인 작촌 조병희 선생과 서양화가 이복수선생은 그에겐 큰 은인. 그들이 평생 수집한 자료를 건네받았고, 이번 책자 발간에도 큰 도움을 얻었다.

이 책의 시작 인물은 조선왕조 최고 여류화가이며 문장가로 보물 제728호‘권선문첩’을남긴 설씨부인(1429~1509). 그리하여 올해로 탄생 200주기를 맞는 묵포도의 거장 최석환(1808~1883), 초상화의 대가 채용신(1850~1941) 등 모두 123명 예술가들의 세계가 전면에 펼쳐진다.

전북의 예술은 어떤 빛깔일까. 이규보는 “소박하고평온하여 수려한 고려청자 같다”고 소개한 바 있다.

이씨는 이에 덧붙여서예와 한국화의 맥이 유유히 흐르는 곳이라고 강조한다.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색채가 농후한 전북 정서가회화대신 서예와 문인화의 자양분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특히 전북 서화 맥이 한국미술의 근간이 됐다는 대목도 매우 인상적. 조선초기순창 신말주의 처인 설씨부인이 쓴 ‘권선문첩’이 그 단초라고 주장하면서 사임당 신씨보다 70여년 앞선 조선 최초 여류 서예가였다고 덧붙인다.

강천산을 그린 산수도와 사찰을 창건하기 위한 시주를 권유하는 내용의‘권선문첩’ 서체도주목할 부분. 당대의 조맹부의 송설체가 아닌 송대의 소동파나황정견의 글씨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을 들어 그 집안이 중국과 교류가 많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 뿐 아니다.

창암이삼만을 비롯 서홍순, 김석돈, 이정직, 조주승, 송기면으로 이어지는 서맥도꼼꼼히 탐색한다.

여기에 1951년 군산으로 피난왔던 김기창, 허백련, 김은호, 변관식, 김태석, 이남호 등으로 연결되니 읽는 재미도쏠쏠하다.

이 책은 그가 평생 쏟아부은 향토사랑의 결정체나 한가지. 컬러가 아니어서 아쉽다는 얘기도 어찌보면 같은 맥락이다.

허나 비록 흑백이라 해도 그 역사성은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는 게 독자들의 전언. 이제 비로소 전북미술계가 미래를 향해 힘껏 비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분위기다.

/김영애기자/#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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