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모든 불행은 홀로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없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이 말했다.

문득 요즘은 속도의 시대가 아닐까 생각해 보며 모든 사람들의 바쁘다 바쁘다라는 말을 상기한다.

바쁘게 살지 않으면 큰일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에 우리 또한 동참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한다.

여백이란 없다.

이는 생존 경쟁의 강박관념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또 생각해 본다.

최선을 다하고 열심인 것은 좋으나 어느 순간 목적이 되어 버렸을 때 혹은 과정이 깡그리무시되었을 때와는 다르다.

삶은 과정이고 살아감이기 때문이다.

시계태엽에 감겨진 시계처럼 바쁘게 움직이고 생각은 바깥으로 끝없이 달려가고 그러다가 생각에 휘말려 어느 것이참이고 어느 것이 참이 아닌지조차 스스로 모호해진다.

아니 모호해졌다는 것조차 모르기도 한다.

문득 조용히 앉아 기도하는 것이 그리워졌다.

묵상하는 것이 좋아졌다.

까닭인즉 작위적인 생각에 말려 길을 놓치고 헤매기 때문이다.

조용히묵상하면서 자신이 지어낸 생각을 지우고 또 지운다.

홀로 있어도 스스로 만들어낸작위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똑같은 수다로 가득 차 있을 때가 많아 모든 생각을지우고 빈 공간으로 앉아 있음이 쉽지 않다.

우리 삶은 대부분 전속력을 내며 엑셀을 밟는 데 익숙해져있기 때문이다.

수 많은 광고는 우리를 현혹하고, 수 많은 정보는 우리를 내버려 두지않는다.

그래서 조용히 앉아 침묵의 소리를 듣는 것은 요즘 시대에 꼭 필요한 행위가 아닐는지…. “침묵의 소리를 듣는 다는 것”은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과는 다르다.

듣는것은 열림이기 때문이다.

  샤뮈엘 베게트의‘고도를 기다리며’는196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희곡에는끝없이 기다리는 두 사람이 나온다.

연극이 끝난 뒤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고도가 무엇을 의미합니까”라고묻자 베게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작품 속에 썼을 것이다”라고. 모른다는 것은 늘 명징하다.

무엇인가에 말을 꺼내려는 순간 그것이무엇인지 더욱 모른다.

정답이 없는 것이 삶이기 때문이고 미래에 대한 확신 또한 그 누구도 장담 할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막연한 불안감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 불안감이 우리에게 작위적인 생각을 만들게 하고 우리는 그것을 사실처럼 느끼곤 한다.

사람은 생각한대로 세상을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는 말이 있다.

스스로 만들어 낸 생각과 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조용히 고요함에 들어 자연의 소리를 듣는 것, 내면의 소리를 듣는것이 그립다.

안과 밖, 누구누구의 말, 누구누구의 생각 등등. 이를 다 지워버리고 무념에 들어 만나는 나, 그것이 진정한 나일 것이다.

내가 만들어 낸 내가, 네가 만들어 낸 네가, 어딘가에서 유령처럼 떠돌지 않는지 문득 섬뜩해진다.

침묵은 말을 하지 않는 것뿐 아니라 여백의 소리, 자연의 소리,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유로움의 하나다.

감정에 흔들리지않는 온전한 우리가 그리운 건 바로 자신이다.

나 또한 바쁘게 나를 잃고 살아 왔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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