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부활절이 예년보다 좀 이릅니다.

겨울이 동장군이 위력을 보여차가왔지만 기온이 순조롭게 지속적으로 올라가 화신(花信)도 서둘러 북진합니다.

봄바람처럼 큰 아량은 정영 이 모든 만물을용납 하는가 봅니다.

부활은 소생(蘇生)과는 다릅니다만 매년 부활절 무렵이면 여러 종류의 봄꽃들이 서로앞 다투며 만개해 그 기쁨이 각별합니다.

바야흐로 천하에 봄기운이 그득 합니다.

이미 연두색 장막으로 펼쳐진버드나무, 냉이 꽃이며 노란 별 같은 민들레꽃 등 풀꽃만이아닌 겨우내 어둔 침묵으로 견인한 마당 한 모퉁이의 금송(金松)은 검고 탁한 녹색에서 맑은 초록으로 나날이 일신하며 푸름을찾았습니다.

봄날은 산야를 붉게 물들이는 꽃은 진달래만은 아닙니다.

우리들 모두, 특히 젊은이 얼굴에도 붉게 핍니다.

우리들 얼굴에 비치는 붉은 기운인홍조(紅潮)는 꽃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때로 부끄러워 수줍음을 타거나 열심히 응원하거나 힘을 쓸 때,몹시 화가 나서 흥분하거나 분노로 인해, 어린이들이 온 힘을 다해 울어 제칠 때도 붉어집니다.

굳이 상춘곡(賞春曲)을운위하지 않더라도 꽃과 더불어 술에도 취합니다.

기쁨과 술은 동서양,어제와 오늘 기릴 것 없는 뗄 수 없는 관계인가 봅니다.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예수님의 첫번째 기적이 다름 아닌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것 아닙니까. ‘흐드러지게 핀 난초’ 혜원이란 아름다운 호를 지닌 신윤복은신말주의 11대 손입니다.

신말주 부인인 설씨는우리 지역 순창 분이지요. 잘 알려진 것처럼 김홍도와더불어 조선시대 풍속화의 쌍벽입니다.

특히 남녀간의 따뜻한 애정을 화폭에 옮겨 아름다운 채색과 더불어화면에 옮겨 많은 이의 사랑을 받습니다.

‘미인도’ 등과 함께 대표작이며 최고의 걸작으로간주되는 풍속화첩이 간송미술관에 간직된 국보 제135호‘혜원전신첩’ 30폭입니다.

일련의 그림 중 첫 번째 폭이 ‘봄빛이 전원에 그득하다(春色滿園)’입니다.

잘 알려진 이 그림은 화면 좌측 초가집 앞뒤로 소나무 옅은 색조의 새 순이며,물오른 잡목 잔가지 끝마다 연두색을 보입니다.

이와 대칭을 이룬 쪽엔 미목(眉目)이수려한 푸른 도포차림의 젊은이와 트레머리를 한 노랑 저고리 차림의 덕스럽고 순후(淳厚)한 외모의 여인네가 연인인 양 서로에게 사랑의 눈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서로의손을 잡기 전이나 봄 채소를 담은 채롱이 바통마냥 두 사람을 연결합니다.

채롱 안에 있는 채소를 보려는 듯하지만 기실 서로의 마음을 읽는것으로 여겨집니다.

어쩌면 한 잔 술이 남정네에 용기를 주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화면 좌측 3줄로 “봄빛이 전원에 그득하니꽃은 피어 붉게 흐드러졌다(春色滿園中, 花開爛漫紅)”으로멋들어진 시구가 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전은 화면을 아무리 요모조모로 살펴보아도 붉은 꽃은 찾아볼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봄기운은 나무 표현에서 분명히 들어나고 있으나 꽃은 어디 있을까요. 물론 여인이 꽃일 수도 있겠으나, 그 보다는 여인에 비교할 때 유난히 붉은 남정네 얼굴이 바로 꽃으로 사료됩니다.

춘흥(春興)이 도도하니 술 탓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봄과 꽃, 사랑과 술이 함께 어우러진 계절이 바로 지금 이 무렵이아닌지요. 이 무렵이면 저는 제 은사이신 박희진시인의 ‘새봄의 기도(祈禱)’란 시를 읊조립니다.

“이 봄엔 풀리게/ 내 뼛속에 얼었던 어둠까지/ 풀리게 하옵소서./ 온 겨우내 검은 침묵으로 / 추위를 견디었던 나무엔 가지마다/ 초록의 눈을, 그리고 땅속의 / 벌레들마저눈뜨게 하옵소서./ …그리고죽음의 못물이던 / 이 눈엔 생기를 / 가슴엔 사랑을 불붙게하옵소서.”대자연을 이렇게 새롭게 변화시키는 위대한 힘은 다름 아닌 따사로운 사랑입니다.

봄은 사랑의 계절입니다.

우리들 모두 시인의 기도처럼 사랑의 힘으로 우리 자신과 더불어세상을 변모시킵니다.

그것이 기적이며 진정한 부활 아닌지요. 새달을 앞에 둔 이 시절 모두들 새롭게 피어나는 꽃처럼 눈부시고 환하게 빛나는 축복의 나날이길 기원합니다.

<이원복국립전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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