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 언덕 위에 백합필적에/ 나는 흰나리꽃 향기맡으며/ 너를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맘에/ 백합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작곡가이자 합창지휘자로 대구 계성학교를 거쳐 평양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한 박태준. 그는 서양 선교사들에게 성악과 작곡의 기초를 배워 ‘가을밤’ ‘골목길’ ‘오빠생각’ 등을 작곡했고, 이 곡들은 동요의 명곡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동요뿐만 아니라 박태준의 음악인생은절대 과소평가할 수 없다.

졸업 후 마산 창신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며 우리나라 선구적 시인 이은상과 함께 여러 예술가곡 형태의 노래를 작곡하던 그는1930년 무렵 미국의 더스커럼대학과 웨스트민스터대학에서 합창지휘를 배우러 떠난다.

귀국한 뒤에는민족운동으로 옥고를 치렀다.

그러던 와중 1945년 전문합창단인 ‘한국오라토리오합창단’을창단해 1973년까지 지휘자로 활동했으며 합창음악 발전에도 크게 기여한다.

허나 이에 그치지 않는다.

1958년 연세대 종교음악과 신설, 1945년 남대문교회 장로로 성가대 지휘, 1968년 한국음악협회회장을 역임하면서 서울음악제를 창설하는 등 자못 굵직굵직한 업적을 남겼던 것이다.

이러한 선생의 업적을기리기 위해 ‘대구 성악회’는달서구 도원동 월광수변공원에 흉상을 건립하기도 했다.

봄철만 되면 아련히 떠오르는 노래가 바로 ‘동무생각(사우)’이다.

타향살이와 일제 강점하에서끊임없이 맴도는 고향 생각과 친구에 대한 추억을 애조적으로 읊었으니 그 의미가 어찌 가벼우랴. 그럼에도담백한 운치가 그만인 연유다.

원래 가사는 사계절 고향 풍경을 4절에 나누어 각각 봄·여름·가을·겨울로서술했다.

철 따라 바뀌는 고향 풍경을 영화를 보듯이 차례로 그려 타향살이로 시름에 겨운 이들의 향수를달래주는 식이다.

이 가곡이 작곡된 것은 1922년 어느 날 밤 마산 바닷가에서였다.

당시 작곡가 박태준 선생과 노산이은상 선생은 마산 창신학교에서 각각 음악과 국어를 가르치는 동료교사였다.

뜻이 맞고 예술에 대한 이해를 같이 했던 두 사람은 퇴근 후 자주 학교에서 가까운 합포만바닷가를 산책하곤 했다.

그 날도 어스름한 초저녁, 갯내음이바람에 실려 오는 길을 두 젊은 예술가는 걸었다.

당시 박태준은 22세, 노산은 19세의 피 끓는 청년이었다.

암울한 나라의 앞날과 예술을 얘기하던중, 갑자기 작곡가의 뇌리에 악상이 스쳐 갔다.

박태준은 황급히 하숙집으로 돌아가오선지에 멜로디를 옮겼다.

다음날 노산에게 보여 주고그에 맞는 가사를 지어달라고 했다.

노산은 고향 풍경을가사로 썼고 그렇게 태어난 곡이 바로 ‘동무생각’이다.

늘 그렇듯 노래는 시가 먼저 씌어지고 그 시를 작곡가가 선택해서 작곡하는 반면 홍난파의 ‘봉선화’처럼 이 곡도 반대로 작곡이 먼저된 셈이다.

가사를 읽기만 해도 절로 선율이 흘러나는 노래가 사랑 받기 마련이다.

노산의 글솜씨가장수애창곡을 남긴 필수조건은 아니었는지….

<한일장신대 음악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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