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 전병윤시인의 ‘산바람 불다’ 이런 시집 한 권 내겠노라고 장담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한 평생 살면서 보고 들었던 것을 시로 정리하면 자료는 물론이고 정보도 되지 않겠느냐는 심산에서다.

하지만 늘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함께였다.

드디어 그 일이 이뤄졌다.

바로 전병윤 시인(73)의 두 번째 시집 ‘산바람불다(신아출판사 刊)’가 주인공. 역사에 대한 단상을 비롯 세시풍속에 얽힌 개인사까지 푸지게 풀어놓았으니 읽는 재미가 쏠쏠하지 않을 수 없다.

“할머니께서 환한 낯꼿으로 말했다/ 오월오일 단오는 양기가 가장 센 날이라면서 구기자차를 달이고/ 뒷산에서 뜯어 온 수리취를 넣고 단오떡을 만들었다.

수리떡에 구기자차를마셔야 힘이 솟는다고, 참기름 냄새 반질하게 발라서 식구들한 입씩 물고 웃었다….” (‘세시풍속 4, 단오’중 일부)어떠신가. 단순한 단오삽화 한 토막을 눙쳐놓고 감쳐놓은 맛이 다디 달지 않으신가. 그뿐 아니다.

역사의식도 못지 않다.

정여립 흔적을 그린 시 ‘죽도에서’로 시작해 ‘세병관에서’ ‘운주사 쌍둥이 와불’ ‘견훤 왕릉에서’ 등에 이르면 역사성은 최고조에 달한다.

“지금 죽도엔 누가 사는가/ 어느 해 칠월칠석/ 그 곳에 솥단지 걸어/ 뙤약볕으로 천렵국 끓여먹고/ 소낙비로함초롬히 목욕하고 나왔다/ … 정여립의 대동계원들은/ 오백 년흐르는 물 붙잡아 놓고/ 좌도 농악으로 칠석을 울리고 있다/ 그렇지,/ 산 자가 죽은 곳엔 혼이 산다.

” (‘죽도에서’중 일부)역사의식에서 나아가 문명 비평적 성격까지 담아내니 시인의 스펙트럼은 자못 다양한 셈이다.

대체 이런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문학평론가 이운룡씨는 시를 적극적으로 찾아 헤매는 사냥꾼 근성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한다.

시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는 피동적인 시인이 아니라 의식적인 탐구작업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덧붙여 시인의 특별한 안목과 변별력 있는 의식도 상찬한다.

그의 글감들이 일상성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탁월한 맛을 주기까지는 심미안과 감수성이 필요하다는 것. 한밤중에도 탐조 등을 밝히고 시를 찾아냈기에 가능하다는 논리다.

끈끈한 서정성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 이는 사물의 깊이와 무게, 넓이를 짚어 볼 줄 아는 나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휴머니즘적 철학까지 곁들여 있으니 찰진 맛이 그만이라고 덧붙인다.

각설하고 그의 시편들은 맛있다.

고희를 넘긴 시인의 인생체험과 생의달관에서 빚어지는 미적 감각이 행간마다 자연스럽게 분화되는 연유일 것이다.

이도 모자란 것인가. “가슴에콱 꽂히는 시가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면, 끓는 물이라도 풍덩 빠져서 고향처럼 살겠다”는시인. 그 고백이 어쩌면 그리도 멋스러운가. 진안에서 태어난 시인은 현재 전주에서 시밭을 일구고 잘 익은 시를 따면서 감동적으로 살고 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열린시문학상 진안군민의장, 전주예술상, 진안문학상, 녹조근정훈장 등 많은 상을 받기도 했다.

영혼의 실로 문향이 밴 비단을 짜기 위해 오늘도 시인은 밤낮 불문하고 물레를 돌리고 있을 것이다.

/김영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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