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터넷에서사진 보는 재미가 하나 늘었다. 봉하마을에서 전해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상(日常)이다. 코믹한 발가락 양말과 슬리퍼로 시작된 그의 퇴임 이후 모습은 마을 ‘점방’ 의자에 앉아 담배를 ‘꼬나문’ 시골아저씨, 멋들어진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손녀의 보행기를 자전거에 매단 채 시골길을 달리는 할아버지로 진화하고 있다.

 민족시인이 40년 전 꿈꾼 대통령

 ‘껍데기는 가라’의 신동엽시인은 이미 40년 전 우리가 꿈꾸는 대통령을 다음처럼 노래했다.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 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중략>…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 병을 싣고 삼십 리 시골길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산문시 1)

 건국 60년이 되도록 역대 대통령들은 재임 중은 거론할 것도 없고 퇴임 후에도 평범한 자연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깊은산사로 쫓겨 들어가거나, 본인 아니면 아들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 다니고 수감되는 불행을 겪어왔다. 더 멀리 국민봉기로 밀려나거나 암살의 비운을 당한 대통령에 이르러서는 말할 나위도 없다.

 지금 노전 대통령에게 느끼는 감회가 더욱 각별한 것은 우리가 단 한 번도 온전한 전직대통령을 가져 보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노 전 대통령은 우리 국민이 오랫동안 그려 왔던 전직대통령의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진정한 ‘대국민 애프터서비스’를 하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노 전 대통령은 일테면 미숙하고 거친 운전사였다. 그는 미처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운전석에 앉게 됐고, 분에 넘치는 큰 차를 끌게 된 것이다. 운전사들에게 불만이 많던 참에 운전대를 잡게 된 그는 포장길을 벗어나 비포장 지름길을 택했다.할 일은 많은 데 시간은 5년으로 한정돼 마음이 급했다.

당연히 승객들은 적응을 하지 못했다. 일등석에 앉은 승객들은 더욱 견디기 어려웠다. 여기저기서 불평이 쏟아졌다. 그럴수록 그는 차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혔다. ‘마음은 급하고, 몸은 따라주지 않는 판국’이 되니 차는 노상 덜컹거렸고, 돌부리에 걸려 튀어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고집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사이에도 그는 불평하는 일부 승객과 ‘맞짱’을 뜨기도 했고, 한때는 ‘못해 먹겠다’고 ‘강짜’를 부리기도 했다. 중간에는 일부 승객들에게 끌어 내려져 운전을 정지당한 적까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두둔하는 승객들이 있어 우여곡절 끝에 다시 운전대를 잡을 수 있었다. 그는 한마디로 ‘깡다구’가 센 운전사였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볼 때 그에게는 남다른 매력이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은 참지 못하고, 배짱이 틀어지면 길바닥에 차를 세우고 오기를 부리고, 지기를 싫어해 종종 승객들과 낯을 붉히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사람을 끄는 ‘힘’이 있었다. 그의 매력은 ‘사심 없음’이었다. 의도의 순수함이었다.

대부분의 승객들도 그가 자기주장이 강한 고집불통이긴 하지만 불순한 심보를 가진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운전사가 지향하는 이상향이 어디든 지금 당장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승객들은 차가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굶거나 병들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권위와 권한 포기로 민주화 기여 

이제 그는 운전석에서 내려왔다. 그는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역사는 그에 대해 질책만 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다.
권위적이거나 특별나지 않은 평범한 대통령,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고 국민 가운데 한 사람으로 존재하는 대통령상(像)을 보여 주었다.

권위를 탈피하다 못해 품위가 없다는 질책도 끊이지 않았지만 그는 대통령으로서의 권한과 권위를 일정 부분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한국의 민주주의를 앞당기는 데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인구에 회자됐던 ‘놈현스럽다’ 는 말 역시 한 단면이다. 국민들이 마음 놓고 국가원수를 비난하고 매도하고 희화화할 수 있었음은 이 나라가 만큼 자유로워지고 민주화됐다는 증좌이기도 한 것이다. 전직대통령으로서 봉하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엮어가는 그가 참 좋아 보인다.

// 강찬구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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