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철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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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자가 잘 알고 지내는 지도층 두세 명과 관련된 악성루머등이 난무했다. 누구 부인이 어쨌느니, 누가 누굴 어쨌느니하는 그렇고 그런 내용들이다. 물론 전혀 사실이 아닌, 일종의 희박한 개연성을 기초로 말쟁이들이 악의를 가지고 지어냈을 그런 류의 ‘이야기’였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 악성 루머는 기정사실인 것처럼 포장돼 급속히 확산되면서 많은 이들의 입줄에 오르내렸다.

어떤 정보취급자는 이를 확인한다는 취지의 확인전화로 여기저기 전화질을 해대며 이를 확산시켰고, 어떤 이는 마치 뭘 신기한 것을 새로 발견이라도 한 양 이 문제로 틈만 나면 떠들었고, 어떤 이는 짐짓 걱정된다는 투로 말하면서 결과적으로 확산에 도움을 보태기도 했다.

조금만 생각하거나 확인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을, 전혀 하나의 사실로서의 구성요건을 제대로 못갖춘 단순 루머가 기정사실인 것처럼 확산되는 과정을 보면서 기자는 또한번 우리 전주사회의 악습을 느껴야만 했다. 남의 말을 즐기고, 특히 잘된 사람들의 ‘꼴’을 못보는 특유의 질시와 미움이 가득찬 전주사회의 폐습을 이번 사건에서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더욱 기막히고 안타까운 것은 당사자들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입었지, 적어도 해를 당하지는 않았을 사람들이 이를 더욱 즐겼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것들이 하릴없고 별로 바쁘지도 않은 지역성 탓이라는 점이 직접적인 원인이겠지만, 평소에도 타인에 대한 사려가 매우 부족하다는 지역폐쇄성과, 나아가 중앙의 강자에겐 악해도 같은 지역민은 철저히 짓밟아야만 생존이 가능했던 아전문화에 그 의식의 끈이 닿아있다는 점이 확인돼 매우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2>

사실 이를 고치지 않고서는 ‘내일의 전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때가 어느 땐데 한가롭게 남의 말이나 지껄이고 있을 때란 말인가. 그것도 나쁜 말만 골라서. 농경사회나 후진사회에서 나타나는 그런 한가로운 작태를 지금까지 계속하는 우리 전주사회가 부끄러울 따름이다.

당사자들의 입장을 헤아리는 단계까지 가진 않더라도 이젠 시대가 변한 만큼 끼리끼리 모여 남의 말을 별식(別食)삼아 뇌까리는 모습들은 정말이지 보기 너무 민망하고 식상하다.

우리지역에 이런 일들이 어디 이 일 뿐이겠는가. 모략, 중상, 음해 등 사회공동체를 해치는 못된 짓이 거침없이 횡행되는 이 악습은 너무 여전하다. 이로 인한 당사자들의 상처는 생각보다 깊고 오래간다. 지역을 떠나고 싶다고까지 말하는 것을 들었다. 큰 죄가 아닐 수 없다. 내가 돌을 던졌을 때 훗날 내게로도 반드시 그 돌이 날라온다는 천리를 너나 할 것 없이 한번 쯤 생각해 볼 일이다.

아무튼 악의에 기초했거나 심심풀이의 유희삼아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사람들을 이간시키고 특정인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다는 걸 가끔 본다. 그럴 때마다 대개의 경우, 억울하고 속상한 나머지 적극 해명하려 들거나 입막음을 대서라도 그 오해나 구설수에서 벗어나려고 거의 몸부림친다.

발본색원 차원에서 진원지를 찾아 응징할 수도 있지만, 쉽지 않을 땐 차라리 침묵으로 일관하는 게 더 나을 때가 많다. 동양 최고 지혜서 중 하나인 주역 곤(坤)괘 六四효 상전(象傳)에 ‘괄낭무구무예 신불해야(括囊無咎無譽 愼不害也)’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그 속에 답이 있다. “주머니 끈을 매듯 밖으로 드러나는것을 막으면 이렇다할 탈도, 저렇다할 칭예도 없을 것이다.

근신한 자세로 임하기 때문에 피해가 없음을 말한다”는 뜻이다. 조용히 자신을 되돌아보며 입을 막으라는 가르침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덧 자신도 모르게 오해나 구설수에서 벗어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게 세상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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