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춘실(진안마령중교사)  아홉 번째 맞은 전주 국제영화제가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지난 1일 밤 ‘입맞춤’으로 관객을 흥분시킨 뒤 연일 ‘새파란 영화’들을 선보여 팬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있다.

새파란 영화라니? 어떤 이는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영화제는 정말 새파랗다.

애초에 상업적인 다른 영화제들과의차별을 선언하고 출발한 전주 국제영화제지만 더욱 신선하고 놀라운 작품들로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극장에서 만나기 어려운 여러 지역의 다양한 영화들. 온갖 영화미학을 실험한 특별한 작품들로차려진 영화의 잔치는 아홉 살 영화제를 더욱 싱그럽게 만든다.

40개국 150편이 넘는영화 중 선택한 것은 총 15편. 우선 개막작을 확보한 뒤 국제경쟁부문전세계 신인감독들의 작품에서 4편을 찜했다.

‘발라스트’ ‘학교가는 길’ ‘코초치’ ‘스트리츠’ 이들 영화는 저예산으로 찍은 신예감독들의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신선한작품이라는 안내. 다음은 올해의 특별전으로 꾸민 베트남과 중앙아시아 영화에서 3편. 헝가리의 거장 감독 벨라타르회고전에서 1편, 알렉산더클루케 감독 회고전에서 2편, 마지막 시네마스케이프 4편으로마무리했다.

이거 고르는데 고통스러웠다.

어린 시절 알록달록한사탕가게 앞에서 망설이던 그 심정을 아는 이는 아시리. 개막작 ‘입맞춤’은 여기선 입 다무는 게 예의일 듯. 자칫결말을 발설하는 바보짓을 하면 테러를 당할 염려가 있을뿐더러, 극장상영을 추진 중이라니 훗날을 기약하는이들에게 도리가 아니다.

이번에 본 영화들은 정말이지 새파랗다.

젊었을 적엔 이쁘고 잘난 스타들에게 혹 해서 연출력보다 연기력에맘이 기울었다.

영화 속의 인물로 완벽하게 태어나는 주인공에게 찬사를 보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새로운 시도와 기법으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노장들의 작품은 필요충분조건에 딱 맞았다.

감정이 절제된 대신 주제를 깊이 파고드는 작품은 삶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원숙미를 느끼게 한다.

일본 학생운동에 종지부를 찍게 만든 ‘1972년 아사마 산장사건’을 다룬 ‘실록 연합적군’은 충격적이었다.

혁명을꿈꾸며 무력항쟁을 하던 연합적군파 학생들의 한 겨울과 마지막 열흘은 이념에 갇힌 이성과 젊음이 어떤 식으로 파괴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와카마츠 코지 감독은관객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때 동지였던 그들을 온전히 추모하고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진정 용기란무엇인가를 묻고 싶었노라고. 자신의 모든 것을 저당잡혀찍은 이 기록물이 새파란 젊음을 되살리게 했노란 백발노장에게 관객들은 힘찬 박수를 보냈다.

또한 남이 찍는 영화의 스텝으로 참가했다 산골오지의 풍광과 원주민의 삶에서 영감을 얻어 단 6주만에 완성한 멕시코의 20대부부감독이 만든 ‘코초치’는새파랗단 말의 본뜻에 가장 걸맞는 작품이었다.

본인들말대로 몇 푼 안든 돈이 그렇고, 길에서 만난 수줍은 산골원주민 아이를 주인공 삼은 것도 그렇다.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사진을 찍고 영화로 만든 3박자를 제대로 갖춘첫 작품으로 국제 영화제에 서게 된 진짜 새파란 감독의 작품이었다.

내일이면 영화제는 막을 내린다.

폐막작 ‘시선 1318’로 뜨거웠던 9일간의 장정을 마치는 것이다.

‘새파란 영화’와 함께 전주를 물들였던 사람들은 내년을 기약하며 떠날 것이다.

잘 만든 영화 하나 들고 올. 멋진 영화를 관람할 저마다의 꿈을 간직한 채….아! 새파란 오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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