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감염 우려가 있는 고(高) 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동남아시아처럼 '상시화''토착화'하는 조짐을 보이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방역당국은 일단 아직까지 그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변종 AI 바이러스에 대한 우려감을 감추지는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재의 발생추세를 볼 때 고병원성 AI가 한국땅에 이미 상시화 토착화했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변종 AI 바이러스 출현 가능성에 대한 우려 증폭지난달 3일 전북 김제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그동안 제주를 제외한 전국에서 40여건의 고병원성 AI가 발생했다.

과거 기온이 낮은 11월과 3월 사이에 집중던 것을 고려하면 이 같은 발생 빈도와 양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방역당국은 변종 AI 바이러스가 유입됐을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 내 AI 발생은 주로 철새에 의한 것으로 여겨졌다.

높은 기온에도 사멸하지 않는 새로운 바이러스로 확인될 경우 한국은 연중 AI 발생 지역이 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질병관리본부는 최근 토착화된 AI가 유행할 경우 인구의 30%가 감염되고 초기 사망자만 5만명이 넘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은 바 있다.

2003년 12월 이후 AI 인체 감염으로 수백명이 사망한 동남아시아의 재앙이 재현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김재홍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는 13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AI 재조명 1차 세미나에서 "AI 토착화는 전국적으로 연중 발생하고 닭 오리뿐 아니라 야생조류에게까지 발병하는 것을 말한다"며 "아직 한국이 토착화단계로 접어들었다고 말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러나 AI 바이러스가 기온이 높은 4~5월에도 나타나는 실태를 지적하며 AI 토착화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는 않았다.

그는 토착화단계로 접어들 경우, 현재 시행하고 있는 살처분 대책만으로 근절하기 힘들다는 점을 들며 "그 단계로까지 발전하지 않도록 방역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착 현실화되면 혼란 불보듯AI의 상시화 토착화가 현실화되면 당장 진단과 치료과정에서 큰 혼란이 예상된다.

AI 정밀검사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연구원은 국내에 1명 뿐이다.

또 AI의 조류 감염여부를 판단하는 전담 검역원도 1명뿐이 없다.

인간의 AI감염 여부를 판단하는 질병관리본부도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AI의 도심 발생 이후 하루 수십여건의 인간 혈액 샘플이 본부로 쇄도하고 있지만 AI 바이러스팀의 인원은 3명에 불과하다.

이같은 상황에서 현재로서는 AI의 거의 유일한 치료제인 타미플루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는 스위스 제약업체 로슈사가 독점공급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나라마다 인구의 20%가 사용할 수 있는 타미플루를 보유할 것을 권장하고 있지만 정부는 현재 전 국민의 2.5%인 125만명분을 비축해 놓고 있을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도심 AI발병이 현실화되자 10일 AI긴급 관계장관 회의에서 항바이러스 제제 도입을 지시했고, 방역당국은 부랴부랴 전 국민의 5%인 250만명 분의 항바이러스 제제를 확보하기로 했다.

그러나 로슈사가 독점공급하고 있는 타미플루를 필요한 양만큼 구입완료하기까지 최소 1년이 걸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타미플루가 무조건 신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4월 식품의약품안전청은 타미플루에 대해 '합병증이나 과거병력 등으로부터 고위험환자로 판단되는 경우를 제외한 10세 이상 미성년자에 대해 원칙적으로 동 품목의 사용을 삼가토록'하는 내용의 경고문을 부착하도록 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타미플루에 대한 대안으로 한 제약회사가 2010년 출시를 목표로 정부 지원으로 AI 백신을 개발중이지만 출시되기까지는 2~3년은 더 기다려야한다.

독성시험과 임상시험, 식약청 허가 등의 절차를 밟아야하기 때문에 실용화 시기는 더욱 점치기 어렵다.

◇국가적 AI 종합대책마련 서둘러야AI의 도심 확산으로 구멍뚫린 대응이라는 비난을 받은 서울 등 지방자지단체들은 13일 긴급회의를 갖고 AI 종합대책을 발표했지만 현재 지자체의 방역체계와 인원, 예산으로는 적절히 대응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서둘러 관련 예산과 전문인력을 확보해 종합적인 AI 대책을 마련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AI 방역방제의 양대축이 되어야 할 국립수의과학검역원과 질병관리본부가 새정부의 '작은 정부' 기조에 따라 인력이 감축되고 있는 실정에 주목하며 선진국의 AI 대응 사례를 주목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05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의회연설을 통해 AI 유행의 잠재적 가능성에 대해 역설한 것이 계기가 돼 조류독감에 대한 국가적인 대응에 나선 바 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의회에 H5NI형 AI 예방을 위한 2000만명 분량의 백신 구입비 12억 달러, 새 AI 백신 기술 개발을 위한 28억 달러, 항 바이러스 의약품 비축을 위한 10억 달러, 연방정부 및 주정부의 긴급 대응 관련 대책비 5억8300만달러 등을 긴급요청했다.

일본 정부도 같은 해 '신형 독감 대책 행동 계획'을 작성해 후생성을 중심으로 항 바이러스 기술개발에 나서는 등 대책에 일짜감치 몰두하고 있어 한국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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