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번은 꼭 그를 지면에 모시고 싶었다. 그를 직접 만나 살아온 얘기를 듣고 그의 생각도 공유하고 싶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그 소망이 이뤄졌다. 지난 7일 그가 소양오스갤러리에 전시를 부린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설치미술가 전수천씨(61·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바코드’를 매개로 전북과의 소통을 시작한 셈이다.

“이번 전시는 두 파트로 나뉩니다.

평면과 설치지요. 평면이 시공간 속 사물을 겨냥했다면 설치는 소통에 중심을 실은 격입니다. 특히 ‘욕망의 숲’은 육체를 통해 욕망의 한계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할까요. 말하자면 정신적인 풍경들이지요.” 전 교수의 근작 화두는 단연 ‘바코드’. 정치도 종교도 예외가 없음은 물론이다.

그 뿐 아니다. ‘장소 특정형(site specific)’ 작품들을 통해 갤러리 공간 자체를 ‘바코드화’해 버린다. ‘바코드’를 이용하는 그의 작업은 수년간 드로잉과 전통적인 미술 언어를 확장시키는 데 기여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각양각색으로 형상화된 ‘바코드’들. 특히 ‘바코드’ 방석 위에 앉은 ‘미륵반가사유상’은 더 이상 국보일 수 없다. 단지 그의 작품 속에서 상생하는 오브제일 뿐이다.

이를 보면서 ‘바코드’로 읽어낼 수 없는 존재와 우리 존재를 함께 생각한다. 그와 동시에 ‘바코드’의 가치 또한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선’과 ‘공간’으로 존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가 ‘바코드’를 작업에 끌어들인 것은 4년 전. 우연히 지갑 없이 물건을 사러 갔다 생각이 머물렀다.

그때 그는 ‘바코드’가 단순한 줄이지만, 상품 가치를 인식하는 매개로 생활을 지배한다는 데 천착하게 된다. 그의 생에 있어 ‘바코드’는 뭘까? 첨단문명의 상징을 넘어 명상 공간이었다. 바코드 위를 서성이며 사유하는 모습은 생각만해도 철학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지난했던 그의 이력과도 유관할 것이다.

정읍에서 태어난 그가 가진 정규 학력이래야 중학교 졸업이 전부. 오로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일념으로 대입 검정고시를 보고, 유학 경비를 벌려고 베트남 파병을 자원하기도 했다.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과 뉴욕 프랫 대학으로 배움을 넓히던 와중에도 그는 도로 공사 막노동이나 페인트공질 같은 허드렛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고학생이었다.

그토록 원하던 미술가의 꿈을 이루게 되자, 일본과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작업한다. 그러던 와중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상’ 수상은 숨겨져 있던 그의 예술성을 세계무대로 끌어내는 계기가 된다. 회화와 조각, 설치, 퍼포먼스를 넘나들며 대한민국 대표 예술가 목록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것이다.

그가 현대미술사에 도전하는 일은 2005년 또 일어났다. 13년 동안 준비했던 미 대륙을 철도로 횡단하는 ‘움직이는 드로잉’ 프로젝트를 실현시킨 것. 이를 통해 세계는 다시 한번 그를 주목했다.

그의 지나온 시간을 설명하기 위해선 미술 말고 다른 단서는 없다. 그만큼 그에게 그림은 삶의 지향점이나 한가지였다. 그런 그가 이제 고향으로 돌아온다.

현재 임실군 운암면 ‘용운분교’를 사서 그 곳을 작업공간으로 꾸미고 있는 것. 5월말이면 문을 연다니 어찌 반갑지 않을 손가. ‘전수천이 마련하는 얼굴보고 이야기하기’전은 소양오스갤러리에서 다음달 7일까지 계속된다.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과 더불어 삶의 무늬로 남을 추억을 이젠 드로잉 해야지요. 이곳에서 작업은 물론이고 전주에 있는 예술가들과 문화예술을 이야기하는 담론의 장도 만들 생각입니다.”

/김영애기자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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