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영화축제에 혼곤히 빠져있을 즈음, 두 권의 책이 배달돼 왔다.

물론 바쁘다는 핑계로 포장지를 뜯어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두 주가 지나갔다.

그러다 마주한 책이 전북대교수인 이종민씨(영어영문학)의 ‘이종민의 음악편지, 화양연가(이지출판刊)’와 역시 전북대 국문과 교수인 양병호씨의 ‘시여, 연애를 하자(시문학사刊)’였다.

두 분다 익히 명성이 알려질 대로 알려진 터여서 굳이 책을 들춰보지 않고도 어림 짐작은 됐다.

‘화양연가’는 이 교수가 2000년부터 해왔던 음악편지의 묶음일 것이고, 시 읽기 운동 비슷한 것을 해 온 양 교수 역시 그간의 작업들을 엮었을 것이다.

  #이종민의 ‘음악편지, 화양연가’ “음악의 영역에서 도드라지기는 쉽지 않다.

글쓰기 분야도 쟁쟁한 고수들이 있어 수많은 도전을 좌절시킨다.

그러나 음악 전공자중에 글쓰기 내공까지 갖춘 이는 드물다.

시인이나 소설가 중에 음악에 조예가 있는 분도 흔치 않다.

음악편지는 그 틈새 어딘가를 노린 것이다.

” 이 교수가 시도하는 ‘음악편지 쓰기’는 일종의 경계선 넘어서기. 문학과 음악의 혼융, 그 비빔을 통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일과 한가지다.

그 뿐 아니다.

그에게 음악과 글쓰기의 못다 이룬 꿈을 대신하는 제 3의 길인데다, 이 작업을 통해 선한 사역에도 동참하고 있다.

2004년과 2006년 1천만원을 모아 북한어린이 콩우유 원료비로 전달해온 것은 그 남지기다.

그의 음악편지 장르는 동서양을 넘나든다.

베토벤의 ‘황제협주곡’을 거론하는가 싶으면 이내 황병기의 ‘침향무’로 가있고, 셀린 디온과 보첼리의 ‘기도’를 얘기하는가 싶으면 다시 야니의 ‘산토리니’로 훌쩍 넘어가 있다.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당최 가늠하기가 어렵다.

서간체문장의 친근함은 또 어떤가. 옆에 앉아 자분자분 들려주는 듯 한데다 생생하기 그지 없어 왕가위 감독의 영화 못지않은 서정이 물씬하다.

  #양병호의 ‘시여, 연애를 하자’ ‘연애’란 말만 들어도 떨리던 시절이 있었다.

‘시’ 한편 때문에 밤을 새워야 했던 기억도 있다.

허나 몸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어떤가. 몸으로 직접 인지되지 않는 것을 불편해한다.

더 이상 은유와 상징의 안개를 그리워하지도 않는다.

양 교수가 ‘시와 연애 하자’고 들추고 나온 것도 다 이런 연유다.

시는 영혼의 치유제이므로 시와 소통해야 건강한 세상이 도래한다는 것. 시는 때로 간호사가 되기도 하고, 고산지대에 있는 고단한 인생의 산소통이 되기도 한다며 시의 전령사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또 시를 읽지 않는 세상에도 강펀치를 날린다.

“시를 읽지 않기 때문에 사회 곳곳이 동맥경화에 걸린 것처럼 자유자재로 소통할 수 없다”며 “삼빡하고 자극적인 감각에만 취해 상상력이 결핍된 사회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고 꼬집는다.

그는 이어 “시가 고품격의 정신을 도야하는 강장제로 호평받던 시대는 이미 추억이 됐다”면서 “감각과 비주얼의 자본주의 시대에 암약하는 시 게릴리들끼리 은밀히 주고받는 삐라에 불과한지도 모른다”고 일침을 놓는다.

시와의 연애, 생각만해도 즐겁지 않은가. 도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인을 비롯 스타작가들, 작고 시인 작품까지 섭렵하면서 양 교수는 사막 같은 세상에 사색의 등불을 켜둔다.

/김영애기자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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