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카프카의 변신이라는 제목이 내내 뇌리에 남았습니다.

사실 그렇게 변할 수도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내내 나는 변신의 주인공인 그레고리가 내 안에 있는 듯 했습니다.

사실 왜 그렇게 변신이라는 말이 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어느 때는 어느 모습이 진짜의 나일까라는 화두에 갇히기도 합니다.

이 세상은 세계와 나로 구성돼 있기에 책 읽는 것을 즐겨 하며 나를 알아내고 싶었습니다.

누군가가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 했던가요? 나를 아는 것이 첫 걸음이라 여긴 것은 나를 아는 것이 무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아닐까요?어쩌면 살아감이 결국 나를 만나기 위한 혹독한 여정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그런 내가 살아가는 곳은 세상이라는 큰 세계구요. 그 세계는 때로는 얼마나 혹독한가요. 그런데 있잖아요. 우리가 길을 갈 때 꼭 거쳐야 하는 터널이 있지요. 그 터널을 거쳐야 다음 길로 접어 들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사람도 꼭 지나야만 다음 길로 접어 들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그것이 때로는 큰 사건일 수도 있구요. 때로는 큰 아픔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길을 지날 때 우리는 나 아닌 그 동안 알지 못 했던 다른 나를 만나며 아프고 힘이 듭니다.

그래요. 사람 하나하나가 자신의 거울입니다.

나를 수많은 사람 속에서 봅니다.

언젠가 혼자 오랜 칩거에 있을 때 내 안에 수 많은 내가 있는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누군가에게 손가락질 한 내가, 이쁜 내가, 미운 내가, 무지 싫은 내가 있었지요. 그 뒤로는 그 누구에게도 연민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 내 모습이 있어 마음이 짠해 옵니다.

사느라고 애쓴다 싶고요.다시 카프카의 변신 이야기를 하자면, 직물회사 외판원인 주인공 그레고리는 어느 날 흉측한 한 마리 곤충으로 변합니다.

처음에는 감동적인 가족애로 그레고리를 돌보지만 결국 그레고리는 가족들의 냉대와 폭력, 증오 속에서 고독하게 죽어갑니다.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했다고 해야겠지요. 흉측한 외모에 돈까지 벌지 못하는, 현실세계는 그를 살아남을 수 없게 했지요.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변화를 통해 자신을 찾아가지요. 그 변화를 변신이라고 바꿔 말해보니 새삼 제가 얼마나 모험을 즐겨 하는지를 알겠고요.그래요, 살아가는 자는 자신이고 또한 살아감 속에서 우리는 수 많은 세계를 만나지요. 그 터널을 지나고 앞으로 나가는 자 빛을 만나겠지요. 그것은 한 세계를 통과 한 거니까요.카프카는 변신을 통해 ‘내면’과 ‘관계’를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나와 나의 내면의 관계, 너와 나의 모습의 관계, 우리들의 관계, 그런 관계 속에서 실패를 경험하며 또 다른 나를 알아갑니다.

그레고리가 처음 벌레로 변했을 때와 죽어가는 것, 모두 죽으면서 자신을 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이죠.  삶 속에서 죽어보는 것, 그레고리처럼, 무덤처럼, 캄캄한 소외를 경험해본 사람, 그렇지만 ‘정직하게’ 그곳을 걸어 나온 사람, 그대는 정말 멋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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