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과 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20일 새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회동을 갖고 국정 현안을 논의했지만 쇠고기 협상에 대한 당·청 입장 차만 확인했다.

이 대통령과 손 대표는 이날 오전 7시30분부터 2시간10여분 동안 청와대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문제를 협의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이 대통령이 "이미 쇠고기 수입업자들이 30개월 이상의 소는 수입하지 않겠다고 자율 결의했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하자 손 대표는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금지하고 30개월 미만이더라도 특정 위험부위는 수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맞섰다.

손 대표가 거듭 '쇠고기 재협상'의 당위성을 역설하자 이 대통령은 난색을 표하면서 쇠고기 검역 주권 명문화 합의가 사실상 재협상에 준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양측은 17대 국회 임기 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문제에 대해서도 별다른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다.

"17대 국회에서 통과시켜 달라"는 이 대통령의 주문에 손 대표는 "조금 어렵더라도 정부가 재협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달라"며 우회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처럼 임시국회 회기를 불과 나흘 앞두고 이 대통령과 손 대표가 현격한 입장 차만 확인함에 따라 17대 국회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처리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양측은 회동 직후 각각 청와대와 통합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도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과 차영 민주당 대변인은 이 대통령과 손 대표의 대화 내용을 꼼꼼하게 전달했지만, 양측의 입장에 따른 온도 차이가 브리핑에서 그대로 녹아났다.

차 대변인은 손 대표가 이 대통령에게 '부자 정부' 논란 종식, '광우병 파동' 관련 대국민 사과, 쇠고기 문제 재협상, 국민과의 소통 등을 요구한 점에 방점을 찍었다.

전날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당초 예상과 달리 이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국정쇄신안을 건의하지 않았다가 안팎의 비난을 샀던 점을 의식한 듯 손 대표가 야당 대표로서 적절한 문제 제기를 했다는 점을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반면 이 대변인은 이날 오후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발표한 '한·미 쇠고기 추가 협의'를 강조했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하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할 수 있는 검역 주권이 명문화됐다고 강조하면서 한미 FTA를 17대 국회 임기 내에 마무리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역설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그러나 양측의 입장 차에도 불구하고 향후 정부와 야당이 추가 협의를 통해 쇠고기 문제 타개책을 모색할 가능성을 배제하긴 어려워 보인다.

이 대통령과 손 대표는 회동 직후 잠시 차를 마시며 사담(私談)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자치단체장 출신 정치인이자 직설화법을 선호한다는 공통점을 지닌 두 사람은 예상 시간을 훌쩍 넘겨 가면서 격의없이 논의를 진행했다는 후문이다.

일단 대화의 물꼬는 터졌다.

청와대로서는 조속한 시기에 '광우병 파동'을 가라앉혀야 한다는 절박함이 지배적인 상황이라 협상을 통해 17대 국회 회기를 연장해서라도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날 회동에 대한 양측의 평가가 대체로 긍정적인 점도 낙관론에 힘을 싣고 있다.

이 대변인은 "이 대통령이 '소신을 가진 정치인'이라며 손 대표에 대한 신뢰감을 여러차례 표현하는 등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고 말했고, 차 대변인도 "이 대통령은 시종일관 손 대표의 말씀을 경청하고 공감하고 수용했다"고 평가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민주당이 처음에는 영수회담을 하지 않겠다더니 오후에 입장을 돌리지 않았느냐. FTA 문제도 좀 더 두고 보자"며 여당과의 극적인 합의점 도출을 기대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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