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봉틀 하나로 자식 넷을 다 가르친 어느 홀어머니가 이젠 늙고 기력이 쇠했다. 약간의 치매도 왔다. 젊은 날, 주변의 재혼 권유를 물리치고 홀로 앉은뱅이 재봉틀을 의지한 채, 거기에 혼신의 힘을 쏟아 아이들 넷을 다 가르치고 여의었다.

때가 되자 아이들은 다 가정을 꾸려 떠나갔고 결국은 그 재봉틀 하나만 뎅그라니 남았다. 그 어머니에게 있어 그 재봉틀은 그냥 단순 물건이 아니었다. 평생 만지면서 닦고 문지르고, 또 대화도 나누면서 언제부턴가 자기도 모르게 차라리 분신(分身)이란 표현이 맞을 정도로 한 몸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죽게 되는 날, 누군가에게 같이 묻어달라고 부탁해야겠다고 맘먹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첫째가 한사코 안 간다던 어머니를 모셔갔다. 어머니는 고집을 부려 평생을 함께한 재봉틀을 가지고 갔다. 어머니는 아파트에서 손녀딸과 같은 방을 썼다. 비좁아 재봉틀을 놓을 자리가 여의치 않았다. 아들이 베란다에 놓았다. 어머니는 그 재봉틀과 떨어지기 싫어선지 틈만 나면 베란다로 나갔다. 며느리는 베란다의 재봉틀이 영 맘에 들지 않았다. 몇일 후 마침 어머니가 잠깐 외출한 틈을 타 며느리는 그 재봉틀을 관리실로 연락해 갖다 버리게 했다.

집에 돌아온 어머니, 이내 베란다로 가더니 계속 두리번거리다 “죄송합니다. 제가 집을 잘못 찾아온 것 같군요.”라며 황급히 나갔다. 그리고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는 누구도 노인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들지 않는다. 무조건 내 기준과 가치판단으로 노인들을 대하며 그들의 편함과 복지를 논한다. 노인들은 느낀다, 이 땅은 노인들이 더 이상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부모를 봉양했고, 자식들에게 헌신하면서 살았던 마지막 세대가 지금의 노인들이다. 그들은 지금 자식들에게 봉양받지 못하고 사회적으로도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더러는 헌신의 삶을 후회하면서 자식들을 원망하지만, 그래도 그 기저에는 그저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만 깔려있는데, 이 땅의 자식들은 이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 그렇게 올 어버이 달과 가정의 달이 있는 5월이 가고 있다.  

  /전북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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