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복(국립전주박물관장)
 꿈나무 - 싹수 있는 대견이와 기특이탐스럽고 화사한 모란도 지고 찔레꽃 향기 드높은 시절이다.

‘계절의 여왕’ 5월도 마지막 주에 이르렀다.

가정의 달이자 청소년의 달로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석가탄신일, 스승의 날, 5.18 민주화운동기념일, 세계박물관의 날 등이 있어 각종행사가 10월 못지않게 많은 달이었다.

올해는 어린이와 부처님 덕에 연휴를 두 번이나 얻었다.

전북에는 전주영화제며 남원의 춘향제, 전북 민속의 해 선포식 등도 있었다.

초록의 물결로 넘실대는 눈부신 계절이기에 ‘실록예찬’이나 ‘청춘예찬’ 같은 명문이 자연스레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천자만홍(千紫萬紅)의 10월과는 다른 느낌이다.

10월이 완숙의 달이나 곧 해가 저무는 노년이라면 5월은 성숙을 위한 성숙을 앞에 둔 달이기 때문이리라. 서양 그 누구의 말처럼  ‘5월은 나머지 11달과도 바꾸지 않는 달’이란 말만큼 가슴에 와 닿는 구절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6월이 ‘계절의 왕’임을 아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미술품 중에는 어린이를 소재로 한 그림이나 조각들이 적지 않다.

고려청자 연적 중에는 손에 쥐기에 알맞은 크기의 조각 형태들이 있다.

잘 알려진 간송미술관 소장 국보 제270호 청자원형연적청자(靑磁猿形硯滴)은 어미 두 팔에 안긴 아기 잔나비가 한 손을 어미 가슴에 다른 손은 어미 뺨에 대고 있는 강한 모성애가 물씬 풍긴다.

청자는 연못에서 물장구치거나 포도 줄기에 매달린 천진무구(天眞無垢)한 동자들도 무늬로 빈번하게 등장한다.

드물긴 해도 여자 어린이도 없지 않다.

꼭 10년 전인 1988년 봄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박물관에서 청자로 빚은 두 남매 연적을 만났다.

그리곤 이들을 소재로 아래와 같이 시작하는 ‘기특이와 대견이’란 제목의 짧은 수필을 쓰기도 했다.

“고려시대 12세기 전반 물 맑고 공기 좋은 전라남도 강진 골에서 대견이와 기특이 쌍둥이 남매가 태어났다.

사내아이 대견이는 보기에도 믿음직했다.

엄마 마음에도 퍽 흐뭇하고 자랑스러워서 동네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곤 했다.

녀석은 동물들을 매우 좋아했으며 강아지며 오리 등도 그를 졸졸 따라 다녔고 이따금씩 그의 품에 안기기도 했다.

계집아이 기특이는 생각이나 행동이 뛰어나고 음전하며 비단결 같이 고운 마음씨로 꽃을 몹시 좋아하는 어여쁜 아이였다.

”얼마 전 참 예쁜 남매는 아닌 형제 대견이와 기특이를 만났다.

단골집은 추억을 담고 있다.

대학시절 찾았던 곳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면 그곳에 가면 대학 시절이 되살아날 것이다.

그러나 30년도 더 지난 시점에서 그런 곳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다.

아니 전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사회생활 10년 접어들 때 문을 연 곳으로 20년 넘게 다닌 을지로 전철역 근처 대형 생맥주집을 모처럼 오래 만에 찾으니 먼 거리는 아니나 지하에서 지상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었다.

수시로 들린 곳이기에 아지트 같은 곳이어서 여간 아쉬운 게 아니었다.

70줄에 든 선배와 옮긴 집을 처음 가니 규모는 비슷했으나 종업원들 얼굴도 바뀌어 전과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평일 아닌 일요일 저녁 무렵이어서 한가한 편이였고 그래도 전처럼 등산복 차림 손님들도 보였다.

창가로 자리 잡고 한 잔 들고 있으려니 두 어린이를 데리고 젊은 부부가 들어와 건너편 테이블에 앉는다.

보려 해서가 아닌 자연스레 시선이 닿는 곳인데 화장기 없는 맑은 여인이며 큰 키에 수수한 차림으로 일견 공부하는 내외 같았고 아들 둘은 통통한 얼굴에 귀염이 듬북 밴 사랑스런 얼굴들로 예닐곱 살 정도였다.

지적이며 차분한 부부의 태도도 인상적이었고 무엇보다도 두 어린이가 너무나도 어른스럽고 의젓했다.

애들이 곧은 자세로 말없이 음식을 모양도 예쁘기 그지없었다.

너무도 조용해서 다시 시선이 이들 가족에게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외국유학 후 돌아온 것인지, 잠깐이지만 별 상상이 다 들었다.

어린 아이는 음식을 들면서 책까지 읽는 것이 아닌가. 맥주를 마시는 우리도 목소리를 크게 할 수 없었다.

우리보다 일찍 자리를 뜨는데 한 어린이 밑에 종이가 떨어져 있었다.

이를 본 그 애는 종이를 주어 자신의 빈 그릇 위에 놓고 나가는 게 아닌가. 어떻게 애들을 교육한 것인가도 궁금했다.

자리를 함께 한 선배분도 경탄을 금하지 못한다는 표정이었다.

싹수 있는 교육이 무엇인가를 새삼 생각나게 한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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