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벽루 옆 ‘전주전통문화센터’가 들어설 무렵 공모과정을 거쳐 선정된 설계안을 두고 설전이 온간 적이 있다.

교동 한옥지구 옆에 들어서는 건축물이니 당연히 기와지붕의 전통한옥 모양을 기대했던 일반인들과 공무원들의 당선안에 대한 반발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당시 심사를 담당했던 건축설계 전문가들과 일반인 사이의 현저한 시각차를 좁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보였을 정도였다.

결국 전통혼례식장 등 향교방향에 인접한 일부 동을 한옥형식으로 변경하는 타협으로 매듭지어져 현재의 모습으로 지어졌지만, 애초의 디자인 의도가 퇴색돼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건축디자인 전문가들의 일관된 주장의 핵심은 기와지붕과 같은 외형의 모습만이 전통의 표현이 아니며, 전통 계승은 전통건축에 스며있는 보다 본질적인 공간적 의미와 특성에 있다는 것이었다.

즉 그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전통의 직설적 모방이며,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전통에 내재된 아름다움과 외형적 형식에서 추출된 이미지의 추구라는 얘기였다.

건축에는 공간과 형태라는 양면적 성격이 있다.

흔히 서양 건축은 형태가, 동양 건축은 공간이 잘 발달돼있다고 한다.

서구에선 건축이 조각과 같은 형태인 부각되는 객체적 존재로 발달된 반면, 동양 건축은 시각적 대상물로서의 형태보다는 비어있는 공간적 성격이 강조된다.

우리의 전통가옥에는 일본식 주택에서와 같은 인위적인 정원의 요소가 없다.

주택을 둘러싼 대자연이 내 정원이다.

일본 건축에서는 자연을 축소시켜 아기자기하고 정교하고 깔끔한 정원을 마당에 만들어놓고 즐긴다.

이에 비해 우리의 마당에는 어떤 포장도, 연못도, 단정하게 다듬어 놓은 정원수도 없다.

그저 싸리 빗질 자국이 나있는 맨흙바닥이고, 담장 옆엔 감나무 한두 그루 심어있을 뿐이다.

굳이 비어있는 여백의 공간을 인위적으로 채우려하지 않았다.

이러한 건축의 특성은 주변 환경에 순응하고 철저히 자연과 하나 되는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 건축에서의 빈 공간이 소박하고 다소 거칠어 보이지만 결코 초라해 보이지 않는 것은 다양한 행위는 물론이고 그 흔적과 문화가 담길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융통성과 그 무한한 잠재적 가치 때문이다.

마을 길에도 이러한 생활을 담는 그릇으로서 빈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내재돼있다.

길은 통로로서의 물리적 기능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컨대 이 길은 이동의 장이며, 휴식의 장이기도 하고, 어린이에겐 놀이의 장이며, 만남의 공간이고 또한 생활의 장이기 때문이다.

새롭게 단장한 한옥마을 은행로의 실개천과 쌈지공원은 생활을 담는 공간과 의미가 부여된 장소로서의 기능을 추구했을 뿐 아니라 전통문화 도시로서의 전주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솟대와 정자, 돌담장과 식재 등이 설치돼 화제거리다.

더욱이 실개천의 수공간에 연출되는 야간조명 역시 다양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 슬럼화된 한옥마을의 옛 모습과 비교하면 그 세련됨에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매력적으로 변했음에도 초등학교시절 걸어서 때론 자전거로 누볐고, 친구들과 해질 무렵까지 놀던 그 길이 낯설고 어색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실개천과 쌈지공원이 있고 야간조명이 있는 디자인 자체는 매우 세련되고 매력적이다.

그러나 전주한옥마을이 전통문화 산업의 중심으로서 전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부각되는 것은 한국의 전통 문화가 자연스럽게 스며있고 우리 건축문화의 모습과 특성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점 때문 아닌가.일제 때 형성된 전주한옥마을의 경우 도로망과 공간구성은 우리의 전통 마을 원형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허나 이러한 다양한 장치와 외형적 화려함으로 치장된 공원화된 이미지보다 비어있는 마당 같은 공간으로, 인공적인 이미지보다 자연스러운 느낌이 살아있는 전통건축 문화의 본질적 특성을 살렸으면 좋았으리라는 아쉬움이 많다.

다소 금욕적 디자인이 우리 전통을 십분 살려낼 수 있지 않았을는지…. 

<백석종 전주대 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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