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처럼/ 푸른 잎 흔드는/ 온 동네 사람들의 둥지/ 마냥 평온한/ 바다의 수평선을 짓는다/ 불룩한 뿌리 올려 서서/ 온갖 이야기 다 품고서/ 염문일랑/ 귀에 꿰고/ 묵묵히 묵묵히/ 매미들의 울음이나 쓸고 있다.

” 장정숙 시인의 시 ‘정자나무’다.

여름철이면 묵묵히 매미들의 울음이나 쓸고 있을 정자나무. 그 나무를 이리 서사적으로 표현했다니 고향을 만난 듯 정겹고도 정겹다.

장정숙 시인(56)이 첫 시집 ‘그 조차도 사랑이라(도서출판 한맘 刊)’를 내놓았다.

2004년 지구문학으로 등단하기 전부터 10여 년 남짓 써온 시들을 한 권에 묶어낸 것이다.

그는 아직 떫은 사과 향 수준이고, 단 맛을 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눙치지만 세련된 것은 아니나 풋사과처럼 싱그러운 시어들로 자분자분 들려주는 솜씨는 그만이다.

그의 시들은 묘한 매력이 있다.

그다지 훤칠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교가 뛰어난 것도 아님에도 시의 결이 안겨주는 여운만큼은 대단하다.

이를 정군수 시인은 ‘순백한 서정성’으로 평가한다.

명징한 시어들을 사용하되 억지로 기교를 부리지 않고, 깨끗한 화폭에 순수성으로 흘러 넘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럴 법도 한 것이 그의 시들은 기성시에서 볼 수 있는 억지 뒤틀림이 없다.

비틀고 구부리는 수사적 현란함 없이 그저 한 획 한 획 필법을 지켜가며 써간 폼이 온전하게 마음에 와닿는 식이다.

“동짓달/ 처마에 메주가/ 덩/ 덩/ 열렸다/ 알몸을/ 하얀/ 비닐치마로/ 둘렀다/ 숨막히게 묻혔다가/ 가슴에/ 꽃을 피우는 그./ 곰팡이꽃 피워야/ 제대로 된/ 메주라 한다.

” ‘메주’라는 시의 전문이다.

소재야 일상에서 건져 올린 그저 그런 것이나, 그가 펼쳐낸 시세계를 보라. 어쩌면 그리도 알뜰살뜰한지 끝내 감탄사를 내뿜고 만다.

“벼 익는 향기는/ 아버지의 냄새/ 젊을 적 아버지는/ 새벽마다 논으로 나가/ 볏잎 이슬 톡톡 털어 보며/ 짙게 여무는 이삭 속 젖내를 맡았다/ 가슴에 품어 살피던 향기/ 아흔을 바라보는 눈 안에/ 아직도 담고 있어/ 이제는/ 지평선 노을밭 거니신다/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추억을 그려놓은 ‘가을 냄새’는 또 어떤가. ‘벼 익는 향기’는 물론이고 ‘이삭 속 젖내’로 인해 벼 이삭 한 톨이 입안에서 물큰하고 씹히는 것 같다.

이처럼 그가 삼는 소재들은 평범한 일상에서 건져 올린 것이 대부분. 허나 그 세상은 몹시 흥미진진하다.

그가 풀어내는 세계에 대한 궁금증으로 호기심이 작동되는 연유다.

어쩌면 그는 시를 위해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기교와 수사를 굳이 차용하지 않고도 담담한 세계를 이리 맛깔스럽게 꾸려내는 것을 보면 ‘천상 시인’으로 밖에는 더 할말이 없다.

허나 그 스스로 시인이 될 수는 없었다.

김동수 교수(백제예술대)와 김종빈 시인(익산문협 회원)의 시가 바로 그 매개였다.

이들 시에 감동받아 시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으나, 어느새 동료시인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이다.

김제 금산면에서 태어난 장씨는 2004년 지구문학으로 등단했으며 버팀목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영애기자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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