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모내기를 해야 할 시기인데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미루고 있습니다.

"정읍시 소성면에서 8만2000여㎡의 수도작 농사를 짓는 윤택근씨(44)는 정읍에서 5번째 촛불집회가 열리던 지난달 31일 마음은 이미 수성동 명동의류 앞 광장에 가 있었다.

윤씨는 최근 모내기가 최적기여서 준비를 서두르고 있지만 촛불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하던 일을 멈춰야만 한다.

저녁 7시30분에 시작되는 촛불집회에 참석하려면 몸도 씻고 식사도 해야 하기 때문에 2~3시간 전부터는 농사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한다.

정읍시농민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그는 농민들의 촛불집회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연락병(?) 역할까지 하려면 시간이 충분치 않다.

이번 주부터는 촛불집회가 주말에만 계획돼 있기 때문에 조금은 여유가 있지만 미뤄 놓았던 일이 산더미 같아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

윤씨는 "이번 촛불시위는 농민에게 불이익이 될까봐 하는 것이 아니고, 치료할 수 없는 질병으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한 국민 건강권 수호 차원이어서 참여가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윤씨를 비롯한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농민들은 이번 쇠고기 수입개방이 농번기때 맞춰 진행되는 것에도 의구심을 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농번기를 맞아 농사일은 농사일대로 못하고, 참석률도 여느 투쟁때 보다는 떨어지지만 대부분의 농민들은 '주경야투'(晝耕夜鬪)로 심신이 지쳐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반발로 촛불집회가 지속되면서 농번기를 맞은 농민들이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집회에 참여하는 농촌의 새 풍속도 생긴 것이다.

"위험요소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만이 '예방'"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윤씨는 소 브루셀라가 국내에 토착화된 원인으로 1990년대 초 미국산 소를 들어오면서부터 생긴 것으로 지목하고 있다.

당시 수입할때의 당국은 "한우에게는 브루셀라가 전염이 되지 않는다"는 무책임한 대답과 함께 수입이 개시됐고 그로 인해 현재는 브루셀라가 토착화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단정했다.

정부가 이번 광우병 위험요소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고 미국산 소를 수입하는 것도 브루셀라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란 것에 대해 농민으로서 나름대로 진단을 내린 것이다.

농사일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농민은 윤씨 뿐이 아니다.

영원에 사는 김재기씨도 지난주 겨우 모내기를 마쳤지만 뙤약볕을 피해 해질 무렵부터 본격 시작되는 일과로 일이 좀처럼 줄어들지는 않는다.

북면에서 한우 사육을 하는 김모씨도 한우를 보살피다 저녁때 촛불집회가 있는 날이면 일손이 바빠지고 미뤄놓은 농사가 쌓이기는 마찬가지.정읍은 특히 도심같이 많은 수는 아니지만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농민들로 구성돼 있어 모내기철에다 복분자 등 봄 작물 손질까지 겹치면서 일손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정부가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관보 게재를 유보하면서 그나마 희소식은 되고 있지만 한미FTA라는 또 하나의 산맥이 버티고 있어서 농민들의 시름은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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