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산 너머 물 건너/ 파란 잎새 꽃잎은/ 눈물짓는 물망초/ 행여나 오시나/ 기다리는 언덕에/ 임도 꿈도 아득한/ 풀잎에 이슬방울/ 왼종일 기다리는/ 가여운 응시는/ 나를 나를 잊지 마오.”   부산에서 만들어진 부산사나이들의 작품이다.

작사자 민형식과 작곡자 김원호는 한 동네의 오랜 친구로 어린 시절을 함께 한 사이였다.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첫사랑의 실연을 바탕으로 하여 ‘언덕에서’를 세상에 내놓는다.

때는 1958년. 어느 가을날, 부산사대 음악과 1년생이던 민씨가 친구인 김씨의 집을 찾았다.

자신들의 모교인 부산평화고를 향했고 지금은 없어진 지 오래된 뒷산을 올랐다.

주택들로 빼곡한 지금의 금정산 중턱인 언덕배기에는 가을을 수놓는 코스모스가 가득했다.

민씨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김씨에게 전했다.

‘물망초’라는 싯귀였다.

시는 마치 김씨 자신의 심정을 그려내듯 담고 있었다.

음악학교 성악과 1학년 시절 좋아하던 여인이 있었다.

허나 부모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히고 급기야는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가슴 속 깊은 상처로 고뇌하던 그는 상처를 달래는데 만 3년여를 걸쳐 시집만 탐독해야 했다.

집에 돌아와 시상을 따라 악보를 그려 갔다.

수십년이 지났지만 손에 선하던 그 모습, 손 한번 잡지 못했어도 엊그제 같이 또렷한 그 얼굴을 너무도 분명하게 뇌리에 남아 있었다.

운명이라던가, 민씨도 고 3때부터 사귀던 여인이 그만 부모들의 반대와 강력한 권고에 못이겨 다른 사람 과 결혼하고 말았다.

충격은 그를 자살 직전까지 내몰았다.

그때 쓴 시가 ‘물망초’다.

작시자 민형식은 유난히 외로움을 많이 탔다.

그것은 김원호와도 비슷했다.

청년기에 소위 플라토닉 러브를 겪지 않으면 비정상이다.

당시에는 여인을 이성이나 에로스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사랑이라는 이미지와 그 고결함을 더 사랑했다.

얼마나 그녀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대했던지 손은 잡되 입을 맞추면 그것으로 죽음이라 여겼단다.

이제 노년이 된 그들에게도 실연은 그들을 성숙케 하는 담금질이었나 보다.

민씨는 원래 부산사대를 거쳐 영남대 음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경북여고 교사를 지낸 성악가 지망생이었다.

독일에서 뒤늦게 유학을 마치고 1984년에 귀국한 그는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합창지휘 전공자의 한 사람으로 ‘할렐루야 합창단’의 지휘를 맡았다.

‘언덕에서‘가 무대에서 첫선 을 보인 것은 1968년 5월 6일 부산시향과의 협연으로 부산에서 가진 제 1회 김원호 작곡발표회때다.

다음해인 1969년 독집레코드 ‘진달래꽃’을 출판할 때 김부열 노래로 취입했다.

작사자 민형식은 1938년생으로 부산사대 음악과와 영남대 음대 성악과를 거쳐 영남대 음대 강사를 지냈고 작곡자 김원호는 1936년생으로 서울음대 성악과를 나와 한국작곡가회 이사를 역임한 바 있다.

<한일장신대 음악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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