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혜원 신윤복을 여장남자로 한 ‘드라마’와 ‘영화’ 촬영이 한창이다.

포복절도할 일은 단원 김홍도와의 연애사건. 전문가들은 황당무계한 설정으로 자칫 역사를 왜곡시키지 않을 지 모르겠다며 염려의 끈을 놓지 못한다.

이 무렵 이원복 국립전주박물관 관장(54)이 내놓은 ‘홀로 나귀타고 미술숲을 거닐다(이가서 刊)’가 눈길을 끈다.

물론 논란 자체에 대한 해답은 아니나 전통 미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제공하기에 충분한 연유다.

일단 선사시대부터 조선 말에 이르는 7천년 한국의 미술사를 훑었으니 그 장황한 스펙트럼이 압권이다.

또 불상으로 대표되는 조각은 물론이고 토기로부터 청자·백자 등 긴 흐름의 과정에 빈 부분이 없는 도자공예와 금속공예, 고분벽화에서 불화와 궁중에서 이뤄진 감상화까지 회화 분야를 두루 만날 수 있으니 문화재 길잡이로도 그만이다.

틈틈이 찍어놓은 사진들을 곁들여 보는 재미도 여간 아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 명품 100선을 비롯해 김홍도의 ‘춘작보희’, 신윤복의 ‘달 아래 개’, 장승업의 ‘삼준도’, 강세황의 ‘사군자’ 등 조선시대 최고 화가들의 걸작은 백미. 그뿐 인가. 보물 제1060호 ‘백자철화 끈무늬 병’, 일본민예관이 소장중인 ‘백자동화호작문호’, 국보 제113호 ‘청화철채 버드나무무늬 통형병’ 등에 얽힌 숨은 얘기들은 독자를 발견의 즐거움으로 안내한다.

미술사와 미학의 토대 위에서 매 페이지마다 전체를 아우르는 통찰을 보여주는 데다 쉬운 설명도 ‘문화재 문외한’을 넘어서는 근거로 삼기에 좋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는 저자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강의한 내용을 구어체로 풀어놓았고, 미술작품에 들어있는 민족의 자화상을 살피는데 주력한다.

2부는 저자가 미술 잡지 등에 기고한 에세이들. 신석기시대 유물이자 ‘미스 신암’으로 불리는 울산 신암리 여인상, 빗살무늬토기, 김홍도 신윤복 장승업의 작품까지 모두 100여점에 달하는 미술품을 상세히 소개한다.

3부는 국내에서 개최된 외국 미술품 전시회를 조명했다.

프랑스 중국 일본 러시아 작품들을 통해 세계 미술사를 압축해 설명하기도 한다.

이 관장은 “조형언어를 바르게 읽는 것이 곧 선조들과 교감하는 첩경”이라며 “이를 통해 우리의 참모습인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관장은 이어 “책 제목은 조선중기 화가 함윤덕의 ‘기려도(騎驢圖)’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면서 “오솔길을 혼자 거닐 듯 고요하게 명상하면서 문화재의 깊은 맛을 느껴봤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고 강조한다.

“그 동안 민족문화의 명품들과 만나는 가슴 뛰는 조우가 많았다”고 고백하는 그는 “문화재를 목숨처럼 아끼고 사랑한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떠올리며 집필했다”고 과정을 소개하기도 한다.

그가 박물관에서 생활한 것은 어느덧 32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0년 남짓을 보내고 공주 청주 광주에 이은 전주까지 지방생활만도 12년에 이른다.

그 동안 그는 ‘한국의 말그림’ ‘회화’ ‘동물화’ 등 10여권의 책을 낸 바 있으며 이 책은 1997년 ‘나는 공부하러 박물관 간다’에 이은 전통미술을 주제로 한 두 번째 산문집인 셈이다.

나귀 타고 32년을 하루같이 우리미술 7천년의 역사현장을 주유한 이 관장. 그가 보여주는 왕고참 큐레이터의 체험과 이론은 독자를 쉽고 재미있는 문화재의 세계로 이끌기에 충분하다.

/김영애기자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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