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미술은 60년대 후반부터 영국과 독일, 그리고 미국에서 성행했던 미술의 경향이다.

당시 일군의 미술가들은 미술을 화랑과 사회로부터 분리하여 자연 속에서 작업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대지미술(大地美術, Land Art)은 어스 아트(Earth Art), 환경 미술(Environmental Art) 등 다양한 용어로 소개된다.

 대지미술은 물질로서의 작품이라는 개념을 제거시킨 미니멀 아트와 개념미술에서 출발하며, 미술에 대한 상업화의 반대와 반문명적 성향을 지닌다.

작가마다 작품의 소재나 경향은 상당한 차이를 보이지만 대체로 규모가 크고 일시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불가리아 출신의 미국 미술가 크리스토 야바체프(Javacheff Christo, 1935~)는 살아있는 공공건물이나 자연을 포장하는 작업을 주로 하였다.

빌딩이나 섬뿐만 아니라 뉴욕의 현대미술관, 파리의 퐁네프 다리, 베를린의 국회의사당을 천으로 포장하였으며, 심지어는 콜로라도의 한 계곡에 100미터가 넘는 높이의 오렌지색 나일론 커튼을 설치해 계곡을 둘로 나누기도 하였다.

엄청난 인력과 비용이 투자되는 이러한 작업은 한시적으로 공개되고 철수되었다.

포장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사물의 물질성에서 우리의 관념이 해방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포장되어 확인할 수 없는 대상은 궁금증과 긴장감을 유발하고, 포장으로 인한 통합과 분할의 인과관계는 사회적 모순과 이념의 대립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로버트 스미드슨(Robert Smithson, 1928~1973)은 ‘소용돌이 방파제(1969~1970)’로 유명하다.

미국 유타주의 솔트 레이크(Salt Lake)를 돌과 흙으로 메꾸어 ‘나선형 방파제’를 만들었다.

트럭 수천대의 분량의 골재와 중장비를 투입해 새만금 방파제처럼 457m 나선형 방파제를 만들었다.

월터 드 마리아(Walter De Maria)의 경우는 드넓은 자연과 자연현상을 이용해 작업하였다.

  유난히 번개가 많은 들판에 6m가 넘는 강철막대 400개를 일정간격으로 설치하여 넓은 들판을 번개로 휩싸이게 함으로써 초자연적 숭고함마저 발견하기도 하였다.

미술관을 중심으로 한 미술의 상업성과 환경과 자연에 대한 지지로 시작된 대지미술은 공공미술이나 설치미술의 개념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고 개념미술에 대한 인식의 확장에도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

하지만 작품제작에 소요되는 경비로 인해 상업화랑과 콜렉터라는 자본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고, 작품을 직접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적이라는 한계를 노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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