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두고 흐른다.

/ 지난날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독립군 군가인가, 운동권 노래인가, 국민가요인가, 국가적 행사음악인가(김영삼 문민정부 취임식때 불렸던 노래), 변절한 친일음악가의 한낮 습작에 불과한 곡인가? 아니면 술자리 애창곡중 하나인가?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곡이다.

두만강에서 연변자치주의 주도인 연길의 사이에 있는 용정이 가사의 배경. 일송정은 우뚝 솟은 비암산 정상에 있는 정자로 투박스러운 시멘트 기둥에 울긋불긋 중국색채의 볼품없는 정자가 그것이다.

원래 가사대로 그늘이 넉넉한 한 그루 푸른 소나무 숲이 있던 곳이지만 이제는 허허벌판에 번듯한 나무도 없이 썰렁하기만 하다.

비암산은 서울의 남산정도로 화강암이 곳곳에 노출된 산이어서 상당히 빼어났다.

현지인들이 흔히 범이 웅크린 상으로 표현하는 비암산에 지난 1991년 몇몇 한국인들이 뜻을 모아 세운 선구자탑은 민족주의를 우려한 당국에 의해 철거돼 흉한 몰골만 남았다. 또 분지모양의 용정을 가로 지르는 강이 해란강이다.

선구자가 말달리던 그 강변을 따라 주택가가 있고 용두레 우물터는 시내 복판 용정중학 가로공원으로 단장돼 있다.

용두레는 물을 퍼올리는 두레박으로 그 모양이 용머리를 닮았다 해서 불리는 이름이다. 시내 초입 용문교에는 구름을 타고 비상하는 황금색 용장식이 해란강을 가로 지르는 다리 양편을 치장하고 있다.비암산으로 오르는 길목에 있던 용주사도 주택가로 변했다.작곡자 조두남은 1912년 평양에서 갑부의 3대 독자로 태어났다.

부친은 안창호선생의 독립운동을 돕다가 투옥돼 그가 18세때 세상을 떠났다.

21세때 만주로 유랑을 떠난 그에게 불쑥 찾아온 윤해영이라고 이름을 밝힌 젊은이가 꼬깃꼬깃한 종이에 쓰인 ‘용정의 노래’라고 쓰인 가사를 내밀었다.

조두남은 청년에게서 발견한 투사의 기상을 기리는 뜻에서 해방 후 ‘선구자’라고 제목을 고쳤다.

KBS는 광복기념프로에서 독립운동가 ‘김동삼’이 가사 속의 인물이라 밝혔다.

조두남의 회고를 통해 비장한 청년독립지사의 이미지로 알려졌던 윤해영이 사실은 일제괴뢰만주국을 찬양하고 합리화하는 글을 쓴 변절 친일시인이었다는 사실이 사료를 통해 밝혀지면서 이 곡도 도마에 올랐다. ‘선구자’가 ‘낙토만주에서 터를 닦는 선구자’로 바뀐 친일시까지 발견돼 노래를 아껴온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또 연변대 조선어문학과교수 권철은 윤해영이 독립운동가가 아닌 시인이었으며 만주국의 친일조직인 협화협회에서 활동했고,해방후 함북 회녕으로 가 그곳에서 사망했다고 구체적 행적을 밝혀내 베일을 벗겨냈다. 이런 이유 등으로 이 노래는 임정선열5위 영결제전 때 조가로 선정됐다가 독립운동 유관 단체 등의 반대로 취소됐다.

또한 작곡시기가 10여년 앞선 박태준곡 ‘님과 함께’의 모작이라는 표절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미 상처뿐인 곡인 되어 버린 선구자! 시대를 호령할 자도 없는 우리 세대가 불행하다.

<한일장신대 음악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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