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택용 (한일장신대 교수)
 아우슈비츠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

독일군에 의한 유태인 학살, 제2차세계대전에 히틀러는 독일 민족의 우수성에 만취된 나머지 유태인을 제거하기로 계획하고 6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가스실로 보내어 생명을 빼앗게 된다.

말이 600만이지 그 숫자는 전주 인구의 거의 10배에 달하는 숫자이다.

전쟁영화에서 우린 기억한다.

한참 총격전 중에 적군을 앞에 둔 군인이 참호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패닉상태에서 바지가랭이 아래로 소변이 흘러내리는 모습,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으면 평소에 전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단 말인가. 유치한 일이지 않을 수 없다.

전쟁에서 조차 생명을 해한다는 것은 제정신으로는 아니 이성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가능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 한 단면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또다시 보여준다.

. 바로 옆에 있었던 전우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그리고 그 광경을 목격한 전우는 금세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함성을 지른다.

그리곤 언제 그랬냐는 듯 광란어린 행태로 돌변하면서 이성을 잃는 채, 그 자리를 박차고 나아가 상대편 적군을 향해 돌진하면서 그들의 생명을 하찮게 빼앗는 일까지 발생하고야 만다.

  그렇다면 독일인들은 그 많은 유태인을 학살할 때, 어떠한 방법을 사용했을까. 그들은 먼저 수용소 내에 화장실의 숫자를 적게 했다.

그리고 유태인들이 화장실에 가는 회수도 제한했다.

화장실에 마음대로 갈 수 없었던 유태인들은 어떠했을까. 처음에는 생리적인 현상을 참아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에게 있어 생리적인 현상은 가장 큰 문제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된 그들은 결국엔 숙소 내부에 대소변의 일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냄새로 인하여 견디기 어려운 처지였지만, 그 일들이 반복되어지면서 온 숙소는 소변과 대변으로 범벅이 되어, 어느새 돈축처럼 지저분하게 되었고 사람과 숙소는 대소변으로 버물려져 버린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던 것이다.

 작가 이의수님은 인간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굶주림” 이라고 말하면서 굶주림은 인간을 동물적으로 만든다라고 언급했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던 유태인의 모습은 바로 인간의 원시적인 모습 즉 동물 그 자체의 형태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유태인을 목격한 독일군인들은 유태인을 학살한다는 그 자체에 대하여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기발한 생각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수용소 내에서 생명력을 부지하고 있었던 유태인들이 있었다.

그들에게서는 특별한 행동이 목격되었다.

하루에 한 컵씩 주는 음료수중 반 컵을 사용하여 그것으로 얼굴과 손을 닦았던 것이다.

인간은 하루에 2L(큰 것으로 두 컵)의 물이 필요하다고 한다.

따라서 그들에게 배급된 한 컵의 물은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지만 그들은 그 부족함 속에서 갈증을 견디며 자신의 모습을 찾았던 것이다.

즉 자신들의 자존감을 찿았던 것이다.

비록 원시인처럼 되어진 육체의 모습이지만 너희 독일군들에게 정신적으로 질 수 없다는 단호한 결심이었는지 모른다.

대한한 정신력이다.

일본인들은 이를 근성(根性)이라는 하고 “곤조”로서 발음한다.

그렇다면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며 살아온 우리 한민족에게는 무엇이 있을까. 홍익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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