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구 사회교육부장
 탄탄하게 구성된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어찌됐건 규모가 1300억원대니 ‘블록버스터’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게다. 액션이나 박진감은 덜하지만 ‘스릴’과 ‘서스펜스’가 곳곳에 장치돼 있다. 게다가 적당한 유머와 유치함까지 담았다. 전주시 상수도유수율제고사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전북도와 전주시간의 갈등이 흥미진진하다. 틀림없이 어느 구석에는 ‘반전’도 숨어있을 것이다.
   '픽션‘을 능가하는 ‘논픽션’이 중인환시리(衆人環視裡)에, 그것도 지방자치단체가 주인공이 돼서 벌어지고 있다. 속을 비우니 점입가경이지, 눈 뜨고 보면 ‘갈수록 태산’이다. 이를 두고 항간에서는 갖가지 분석과 해석, 유추, 추측, 억측까지 곁들여지고, 이것들이 다시 각색되면서 ‘픽션’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사건 또한 얽히고설키면서 예측 불허의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법적 진행 중인 사안만도 4건
 현재 이 사건과 관련해 법적으로 진행 중인 것만도 전주시의 사업자 선정 과정에 대한 검찰 수사, 현대건설의 전주시에 대한 ‘적격자 지위 확인 무효 소송’, 전주시 공무원들에 대한 전북도의 명예훼손 수사, 전주시가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권한쟁의심판’ 등 4건이나 된다. 앞으로 전주시가 도의 중징계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전주시장을 직무유기로 고발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단순하다.
  지난해 12월 전주시 상수도유수율제고사업 대상자 선정에서 비롯됐다. 포스코건설과 현대건설이 경합을 벌인 가운데 당초 현대건설의 기본설계평가 점수가 높았으나 포스코건설이 이의를 제기했다. 전주시는 이를 받아들여 자문변호인단회의를 통해 현대건설에 2점 감점을 결정했으며, 이 때문에 포스코 건설이 낙찰자로 결정됐다. 현대건설측은 이에 불복해 법원에 소송을 냈으며, 지난 2월13일 재판부가 기각 결정하면서 일단락됐다.
   이로부터 닷새가 지난 2월18일 전북도가 전주시 감사를 시작했다. ‘입찰 절차의 공정성에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이유다. 도는 4월15일 ‘중대한 하자가 있는 행정 행위’로 규정짓고, 회계 질서를 문란케 한 책임을 물어 부시장을 비롯한 5명은 중징계, 2명은 경징계토록 전주시에 요구했다. 시는 이미 법원에서 ‘하자가 없다’고 판단한 사안이라며 반발했고, 이후 도에 이의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대건설은 전북도의 감사 처분을 근거로 5월에 다시 전주지법에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6월16일 ‘입찰 중지 가처분 신청’의 일부를 인용해 현금 10억원을 공탁하는 조건으로 ‘적격자 지위 확인 무효 소송’이 끝날 때까지 공사 후속절차를 중지하도록 했다. 본안 소송은 현재 진행 중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현대건설측이 전북도로부터 정보공개청구로 입수해 법원에 제출한 ‘이의신청 기각문’에 해당 징계 공무원들의 신상이 명기되고, 도지사 직인이 없는 초안으로 드러나면서 전주시 공무원들이 지난 3일 전북도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검찰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전주시가 ‘도와 현대건설측이 연계돼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전주시는 별도로 지난달 13일 ‘전북도의 감사는 자치 권한을 침해한 것’이라며 헌법 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제기했다. 이것으로 우리 지역만의 문제를 넘어섰다. 게다가 전주지검에서는 이 사업의 전반에 관해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 사이 골프 사건 등이 터지면서 기름을 끼얹고, 갖가지 주장과 여론 띄우기 등으로 감정이 격해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불길로 번진 것이다.

  감정 풀고 협력할 수 있을지…    
전북도와 전주시의 갈등은 결국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제 3자의 손으로 넘어갔다. 전주시의 사업자 선정 과정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되면 이번 사안의 실마리가 풀릴 것으로 예상된다. 행정 행위에 비리가 있었는지, 아니면 모함에 의한 것인지 드러나게 된다. 행정 절차의 하자 여하에 따라 도와 시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전주시 공무원들에 대한 징계 문제도 해답을 찾게 된다. 현대건설의 입장도 정리된다. 공무원 명예훼손과 ‘권한쟁의심판’도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제는 그 이후다. 전북도와 전주시의 잘잘못이야 법적 판단을 통해 드러나겠지만 어디서부터 단추를 다시 끼워야 할지 답답한 심정이다. 물론 양측의 주장대로 사회 정의 실현도 중요하고, 잘못된 행정 관행을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긴 소모전 끝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지 안타깝다. 법적 책임이야 잘못한 측이 지면 그만이지만 그런 악감정을 풀고 미래를 위해 협력해 나갈 수 있을지, 딱하기로는 자치단체나 시민들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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