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구 사회교육부장

 이태전인 2006년 8월15일, 나는 독도에 있었다. 광복절을 맞아 독도를 사랑하는 도내 인사 30여명과 함께 가족들을 데리고 독도를 방문했다.
울릉도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쾌속선으로 2시간 남짓 달려 두 개의 봉우리로 우뚝 솟은 독도를 처음으로 만났다. 그날따라 독도를 감싸고 있는 바다는 그지없이 평온했다. 그러나 내 마음속의 풍랑은 어느 때보다 거칠었다.

  배를 타고 섬 주위를 돌면서 애틋한 마음으로 구석구석을 살폈다. 망망대해에 외로이 떠있는 국토의 막내. 그간 모진 비바람 속에서 상처 입은 곳은 없는지, 외롭지는 않았는지... 동해 한가운데 우뚝 선 이 작은 섬은 독야청청(獨也靑靑) 푸른 솔처럼 의연하고 꿋꿋하게 파도와 바람에 맞서고 있었다. 섬 뒤편에 운무(雲霧)처럼 우리 순시함이 독도를 지키고 있었다.

  독도를 지켜 낸 어부 안용복    
독도를 한 바퀴 돈 뒤 선착장에 내렸다. 통상적으로 일반인이 독도를 밟을 수 있는 시간은 30분. 그 날 우리 일행은 독도를 지킨 안용복 등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제를 지내는 관계로 30분을 더 머물 수 있었지만 선착장 주변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독도는 이미 1500년전부터 신라의 땅이었고, 1342년 ‘세종실록지리지’에 우리 땅으로 문서화됐으나 그 뒤에도 일본은 호시탐탐 울릉도를 노렸다. 종종 섬에 나타나 노략질하고, 이곳에 터 잡고 살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땅 독도를 지켜낸 사람은 조정도, 사대부도 아닌 평범한 어부 안용복이었다.

  안용복은 원래 경상도 동래 사람이다. 동래에 왜관(倭館)이 있어 일본어를 할 줄 알게 된 그는 1693년 울릉도로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우연히 일본어선 7척을 만나게 된다. 그들과 싸우다 일본 오랑도(五浪島)로 납치된 그는 도주(島主)에게 “울릉도는 원래 조선 땅이다. 우리 땅에서 마음대로 다니는데 왜 잡아 가두느냐”며 항의하다 인근 백기주도(伯耆州島)로 옮겨졌다.

  백기주도(伯耆州島) 도주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여 에도막부(江戶幕府)에 뜻을 전했으며, 에도막부 또한 그의 말에 수긍하고 돌려보낼 것을 명했다. 이 때 막부 장군인 도쿠가와 쓰나요시는 ‘을릉도는 일본 영토가 아니다, 더 이상 울릉도에 침범해서는 안된다’는 서찰까지 써 보냈다. 그러나 안용복은 돌아오던 길에 대마도(對馬島) 도주에게 잡혀 서찰도 빼앗기고, 다시 억류되는 신세가 됐으며, 4개월여 만에 풀려난 그는 동래부사에게 사건 전말을 고했다가 국경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2년동안 옥살이를 하게 된다.

  안용복은 일본 어선들의 횡포가 여전하다는 말을 듣고 다시 일행 10여명을 모아 이들이 거처로 사용하고 있는 독도에 들어가 솥단지를 부숴버리고 도망치는 적들을 쫓아 일본의 오랑도(五浪島)까지 가게 된다. 그 곳에서 그는 ‘울릉도 수포장(搜捕將)’을 자처하며 태수와 담판을 지었고, ‘울릉도와 독도를 침범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돌아온다.

  안용복이 돌아온 이후 사건을 보고받은 조정은 국경을 침범해 분란을 일으키고 관리를 사칭했다는 죄를 물어 그를 참하려고 했다. 다행히 일부 신료들이 나서 ‘독도를 지키게 된 것은 그의 공로이며, 사형은 지나치다’고 고하면서 가까스로 참형을 면하고 귀양살이를 떠나게 된다.

  독도문제로 다시 세상이 시끄럽다. 잊을 만하면 제 것이라 우기고, 걸핏하면 가로채려 드는 무례한 이웃 때문에 우리도 참 고단한 처지다. 그렇지만 그들의 소행을 의례적인 일로, 귀찮은 일로 치부하면 안된다. 그들은 의도를 감추고 치밀하게 일을 만들어가는 간교한 사람들이다. 이번 독도 소동 또한 음모가 숨어 있음을 간파해야 한다. 일종의 시나리오다. 독도 근해의 풍부한 어자원과 독도 확보를 통한 배타적 경제수역 확장. 그리고 막대한 양의 ‘하이드레이트’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영토와 자원을 지키는 일    

정부와 위정자들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우리 땅을 넘보지 않도록 따끔하게 혼을 내고, 다시는 집적대지 못하도록 ‘불가촉(不可觸)’각서라도 받아야 한다. 한편으로 국제적 분쟁 상황에도 대비해 철저하게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 국제 여론을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독도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면 3백년전 앙용복을 참하려던 조정이나 다를 바 없다.

  국민들도 가만있을 수는 없다. 우리의 역사가 늘 그랬듯이, 위기에서 이 나라를 지켜낸 것은 언제나 민초(民草)였다. 일본에 본때를 보이고, 국제사회에도 우리의 억울함과 결연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이제 독도를 위해 촛불을 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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