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이 있으리다/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료/ 못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것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개벽’지 1923년 5월호에 실린 소월 김정식의 ‘못잊어’를 하대응이 작곡한 곡입니다.

남성적인 가락이 독특하지요. 마치 첫 부분부터 절규하듯 사자후를 토해내는 강렬한 울부짖음이 연상되는 도입부는 범상치 않은 고통의 호소를 짐작케 합니다.

그러다가 끝부분에 이르면 독백처럼 무반주로 읊조리다 흘러 가는데 극도의 아픔으로 실성하고만 소리가 되어 들려집니다.

이 심각한 노래를 고교시절 즐겨 불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좀 미안한 생각도 듭니다.

왜냐면 기껏 고등학생때 무슨 실연의 아픔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아는 것도 아니었을 테니 이런 가사를 얼마나 이해했을까 싶어섭니다.

소월은 대표적인 서정시인입니다.

‘못잊어’외에도 ‘금잔디’ ‘진달래꽃’ ‘산유화’ ‘초혼’ ‘엄마야 누나야’ 등 300여편의 주옥같은 시가 있지 않습니까? 개인적으로 이별의 아픔을 삭히며 떠나는 임을 축복하며 보내는 ‘진달래꽃’을 좋아합니다.

하다하다 안되면 복이라도 빌어 주는 게 우리식 이치인 모양입니다.

그래서 우리네를 착한 백성이라 부르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50~60대 장년들에게 기억이 선한 곳은 남산의 ‘소월로’입니다.

70~80년대에는 정말 손꼽히는 데이트코스였지요. 숱하게 많은 연인들이 웃고 울던 곳이 아닙니까?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으면 어느새 아픔이 찾아오고, 체념과 미련 속에서 세월을 보내기 마련이었지요. 소월은 그 맘을 살펴서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오리다…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라고 노래했던 모양이지요. 작곡자 하대응은 1914년에 나서 1983에 삶을 마감한 강원도 홍천출생입니다.

원래는 성악가로 활동했고요. 이 곡을 작곡한 시기는 6.25후인 1954년경 대구 효성여대에서 강의하던 때입니다.

그의 집 근처에 ‘수성못’이라는 호수가 있었다는데요. 주변 따라 산책길이 있고 길 옆에 자그마한 숲들이 있어 누구나 시 한 수 정도는 읊조려 볼만큼 예쁜 곳이었다 합니다.

지금은 관광지로 조성돼 유흥시설만 즐비하니 호젓한 멋은 찾기 어렵겠지만요. 어느날 호수를 거닐다 그 호젓함에 고무됐는지 고향 계신 어머니가 생각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됐답니다.

그 무렵 소월 시에 곡을 붙였다는 얘기지요. 그러니 실은 연애노래는 아니었습니다 그려. 오히려 ‘사모곡’인 셈이지요. 하지만 어떻습니까? 이 노래 아니면 그 옛날 사랑하던 이로부터 버림받은 심정을 대신할 다른 노래가 없었을 테니 말입니다.

당시 현실의 무게에 짓눌린 소월은 1934년 12월 23일 부인과 함께 취하도록 술을 마셨는데, 이튿날 음독 자살로 33세의 인생을 마칩니다.

그 사연에 실어보면 사뭇 느낌이 다를 겝니다.

<한일장신대 음악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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